“다시 만나게 돼서 다행이오. 어떻게 된 거요? 나는 당신에게 촛대도 드렸는데.
그것도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은이니까 2백프랑은 넉넉히 받을 수 있을 거요.
어째서 그 그릇하고 함께 가져가지 않으셨소?” 장 발장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 거룩한 주교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중략)… 주교는 그에게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마시오. 절대로 잊지 마시오. 이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겠노라고 내게 약속해준 일을 말이오.”
1795년 26살의 청년 장 발장(Jean Valjean)은 7명의 어린 조카들을 위해 파브롤 성당 앞 광장에 있는 빵집의 유리 진열장을 깬다.
피가 흐르는 팔로 빵 하나를 움켜쥐고 달아나던 그는 빵집 주인에게 잡혀 재판소로 넘겨진다. 장 발장이 훔친 빵 한 조각의 대가는 너무도 컸다.
장 발장은 5년형을 선고받았고, 4번의 탈옥 기도로 인해 도합 19년을 감옥에서 보낸다.
긴 세월 복역을 마치고 석방된 장 발장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디뉴(Digne)에 들러 숙박할 곳을 찾지만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한다.
형무소와 개집에서도 쫓겨난 장 발장의 처지는 참으로 처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차디찬 돌 벤치 위에서 노숙을 하려던 순간 어느 노부인의 추천을 받고 찾아간 집에서 장 발장은 미리엘(Myriel) 주교의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된다.
그러나 감옥에서 악습에 물든 장 발장은 그날 밤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 도망치고, 다음 날 헌병들에게 체포돼 미리엘 주교의 집으로 돌아온다.
주교의 은식기를 훔친 일은 청년 시절 빵을 훔쳤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 발장의 인생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미리엘 주교는 헌병들에게 멱살을 잡혀 축 늘어져 있는 장 발장에게 다가가 왜 은촛대도 같이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물은 후 은촛대까지 내어준다.
그리고 주교는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한 일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꿈에도 약속을 한 기억이 없는 장 발장은 처음에는 주교의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주교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고, 이 일을 계기로 정직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결심한다.
이후 이름을 마들렌으로 바꾸고 북부 프랑스로 건너간 장 발장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Montreuil-sur-Mer)에서 새로운 검은 구슬 제조법을 고안해 내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가 여러 선행으로 사람들의 신망까지 얻고, 시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자 국왕은 마들렌을 시장으로 임명한다.
이상의 이야기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대표작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전반부 줄거리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리엘 주교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장 발장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그가 시장이 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장 발장의 갱생은 어떤 강압이나 끈질긴 호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주교는 은식기를 훔쳐간 장 발장을 용서해주고, 은촛대를 얹어주면서 자신과 한 약속을 잊지 말라고 말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