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선 해설위원의 퇴장
시원시원한 축구해설로 인기를 모았던 신문선 해설위원. 그의 "골, 골이에요"라는 말은 한때 유행어였다.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다보면 딱딱해지기 마련이지만 그의 해설은 전문성과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대중은 그의 이런 파격을 사랑했다.
2006년 월드컵. 한국대표팀은 스위스에 2 대 0으로 무릎을 꿇었고 16강 진출은 좌절되었다. 치열한 중계방송 경쟁을 벌이던 다른 방송국의 해설위원들은 판정을 비난했다. 신씨만은 주심이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봤다고 평가했다. 방송국은 시청률 때문이라며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에 그를 해고했다. 이 이례적인 도중하차는 단순히 시청률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게 방송계의 정설이다. 대중을 분노케 한 그의 해설이 문제였다.
네티즌들은 신씨의 그간의 해설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했다. 대중들이 좋아했던 그의 어록을 다시 들먹이며 전문성 없는 개그맨이었을 뿐이라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갔다. 이들 네티즌이야말로 한때 신씨의 오락적인 해설에 광분하면서 '신문선 어록'을 만들어 유포하던 주역들이었다.
◆엿장사 맘대로
옛날, 중국에 왕의 사랑을 받던 젊은 신하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신하는 임금의 마차를 타고 궁 밖을 나갔다. 임금의 마차를 하락 없이 타고 궁을 나간 신하는 형벌을 받는 것이 왕명으로 된 법이었다. 이 젊은 신하를 질시하는 무리가 임금께 일러바쳤다. 임금께 불려나온 신하는 집의 노모(老母)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겨를 없이 가장 빠른 마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고 아뢰었다. 왕은 이 신하를 고발(告發)한 신하들 앞에서 젊은 신하의 효심을 칭찬해 주었다. 자기가 받을 벌조차 두려워 않고 노모를 걱정한 효심을 말이다.
또 어느 날 젊은 신하는 왕과 함께 복숭아 농장에 시찰을 나갔다. 복숭아가 잘 익었는가를 알기 위해 하나를 따서 맛을 보던 신하가 제 먹던 것을 옆에 있던 왕에게 권하였다. 왕은 그 복숭아를 받아먹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신하들은 젊은 신하의 무례함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번에도 이 신하를 감쌌다. 신하가 베어 문 복숭아의 맛은 1000개 중에 하나가 있을까 말까 한 것이었고 이 젊은 신하는 왕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만 소소한 예절은 까맣게 잊을 정도였던 것이라니 왕을 사랑하는 신하의 마음이 갸륵하다고 말이다.
세월이 흘러 신하는 늙고 수려함을 잃었다. 이제 왕은 이 신하가 싫어졌다. 어떤 사소한 사건에 이 신하가 연루되자 왕은 가차 없이 신하를 문초토록 명하였다. 예전 같으면 문제 삼지 않을 일이었으나 왕은 담당자에게 이 신하의 역심(逆心)을 찾아내라고까지 말했다. 역심의 근거로 왕이 일컬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놈은 예전에 나의 총애를 이용해 나의 마차를 허락도 없이 타고 궁 밖으로 나가 이를 금지한 왕명을 가벼이 여겼고, 또 어느 날은 제 먹던 복숭아를 짐에게 권할 정도로 왕을 업수이 여겼다." (한비자)
◆뉴욕타임즈 마음
올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비도 많이 왔다. 방학 잘 지냈냐는 인사에 학생들이 답한다. 아열대를 경험하고야 말았노라고 말이다.
지난해 12월, 겨울치고는 따듯한 날이 많았다. 지구온난화에 열성인 뉴욕타임즈는 연일 온난화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2월이 되자 이번에는 한파가 몰아쳤다. 뉴욕타임즈 2월7일자는 '온난한 겨울의 뼈아픈 반전'(In Midwest, a Bitter Turn In a Temperate Winter)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물론, 이번에는 지구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는 심층기사를 내지는 않았다. 4월 봄바람과 함께 맞게 되어 있는 부활절. 폭설이 내려 미국인들은 성탄절 같은 부활절을 보냈다. 뉴욕타임즈는 이상하게 추운 봄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겨울에 따듯한 날도 있을 수 있고 봄에 눈도 올 수 있다. 자연은 언제나 인간의 기대와는 상관없이 저만치 혼자 피어있는 산유화 같다. 예상과 다른 어떤 모습이라도 그건 원래 복잡한 자연의 일면이라고, 인간의 제한된 지성이 포착하지 못한 자연의 본모습이라고 전제하는 것이 순서요 예의다. 이상 한파가 몰아쳤다고 지구가 추워지고 있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곤란하다. 그러니 신중한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온당하다. 그러나 만일 2월에도 춥지 않고 더웠다면, 부활절에 아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달걀을 찾아야 했다면 뉴욕타임즈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지구온난화 전도사를 자처하는 뉴욕타임즈의 행태로 보아 전문가들을 동원해 끝장나버린 지구의 기상시스템에 대해서 경고하느라 바빴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