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자 권력집단으로 변질하며 신분제 고착화…상공업 퇴조, 쇄국정책으로 국제 교류도 사라져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성리학자 권력집단으로 변질하며 신분제 고착화…상공업 퇴조, 쇄국정책으로 국제 교류도 사라져

생글생글2022.06.09읽기 5원문 보기
#농업 위주 정책#신분제#성리학#쇄국정책#사대교린#상공업 억압#외세 의존#당쟁

(99) 조선이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6가지 이유

조선은 농업 위주의 정책을 강행했다. 벼농사는 식량을 제공하는 근간산업이며 낮은 산들과 들판, 길고 느린 강물이 발달한 자연환경에 적합한 산업이었다. 조세를 징수하고 백성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데도 편리했다. 조선은 농민들을 법령으로 토지에 묶어두면서 실질적으로 주거 이전의 자유를 빼앗았다. 반면 공업과 상업, 어업, 무역은 억압하고 천시했다. 산업은 경제적인 부를 창출하고 확장할 수 있으므로 사회의 가치관과 신분제 등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특정한 기술력을 갖추고, 정보를 공유하며, 부유한 데다 실용적이고 역동적인 세계관을 갖춘 전문가 집단은 중앙에서 통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성리학자들은 산업의 발달을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로 간주했다. 그 결과 산업과 경제활동은 정체 상태에 머무르거나 후퇴해 국가의 부가 증가할 수 없었다.조선은 쇄국정책을 강화했으며 멸망 때까지 고수했다. 건국 초기부터 표방한 ‘사대교린’은 중국에 사대하고, 일본과 교류한다는 방침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쇄국정책이었다. 명나라는 왜구의 발호와 내부의 정치적 문제, 성리학의 영향 등으로 해금정책을 추진했고, 일본은 쇄국이라는 기조 속에 부분적인 개항을 허용하고 왜구의 존재도 묵인하는 정책이었다. 반면 조선은 완벽한 쇄국정책을 고수했다. 국제적인 환경과 명나라의 영향도 있었으나 내부적인 이유로 개방정책을 취하거나 여러 나라와 외교나 무역을 할 의도가 없었다. 개방을 허용하면 다른 체제의 존재와 성격을 확인할 수 있고,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수용하고 경험할 수 있어 서열 체제 속에서 누리는 양반들의 특권과 조선사회의 근간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쇄국정책 탓에 신문물과 기술의 수용이 부족했고, 국제관계를 파악하는 능력과 외교술이 미숙했으므로 국방 등 주변국과 관계된 사업을 등한시했다. 결과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참혹한 결과였다.외세에 의존하는 성격과 체제도 더 강해졌다. 건국하는 과정에서 국호를 선택하는 데 명나라의 허락을 구했고, 명나라의 연호를 수용했다. 이후 정치적인 선택과 외교 관계의 기본 성격을 결정하는 데도 명나라의 간섭과 영향을 받았다. 외세 의존적 정권은 상실된 자주성을 감추거나 왜곡시킬 의도로 내부를 더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내부에서 정통성이 허약하고, 정치적인 도전이 심각할 때는 외세에 더 의존한다. 조선은 세종대왕 이후에 사대성이 심해진 탓에 명나라의 간섭과 조공품의 양이 늘어나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고, 사료에 나타나듯 산업 발달이 위축돼 경제적으로 곤궁했다.양반들의 문화와 예술의 독점 현상도 두드러졌다. 전국에 설치한 향교와 서원 등을 네트워크화해 유교를 종교와 사회윤리로서 교육했다. 동시에 전통신앙과 불교, 습속 등을 억압했다. 뿐만 아니라 송나라와 명나라의 문화를 모방한 ‘시(詩)’ ‘서(書)’ ‘화(畵)’란 장르를 창작하고 누리는 등 예술을 독점했다. 반면 실생활에 기초한 문화, 평민들이 참여한 놀이와 예술은 천시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문화와 예술은 관념적이고, 자의식이 약하고, 계급적이었다.초기 개혁세력의 이상과 실천 의지가 이렇게 몇 가지 성격으로 변질되면서 조선은 구조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바다 건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대병력을 동원해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조선의 보수와 진보는 권력과 경제권의 장악을 놓고 피 흘리는 당쟁을 벌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대사화를 겪고, 다시 성리학을 표방하고 ‘이기론 논쟁’을 펼치면서 동서로 나뉘어 또 다른 권력투쟁을 하고 있었다.이상과 원론, 사상은 중요하지만 결국은 운용하는 사람과 세력, 그리고 상황에 따라 크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교조적인 논리와 열정적인 이상론자들보다 차라리 실용적인 사상과 적응력이 뛰어난 현실적인 인물들이 오류를 범할 확률이 낮다. 기억해주세요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사마르칸트대 교수 조선의 외세에 의존하는 성격과 체제가 더 강해졌다. 건국하는 과정에서 국호를 선택하는 데 명나라의 허락을 구했고, 명나라의 연호를 수용했다. 이후 정치적인 선택과 외교 관계의 기본 성격을 결정하는 데도 명나라의 간섭과 영향을 받았다. 외세 의존적 정권은 상실된 자주성을 감추거나 왜곡시킬 의도로 내부를 더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은 세종대왕 이후에 사대성이 심해진 탓에 명나라의 간섭과 조공품의 양이 늘어나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고, 사료에 나타나듯 산업 발달이 위축돼 경제적으로 곤궁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는 모화사상에 빠져 사회 전체의 자율성과 활력이 약해졌고, 문화는 사변적이고 창조성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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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의 북학파는 청·일본·러시아를 통해 서양의 선진 문명을 수용하고 개혁을 추진했으나, 성리학 중심의 기존 세력의 강한 저항, 신분제의 경직성, 추진 집단의 정치·경제력 부족, 쇄국정책으로 인한 지리적 한계, 그리고 정조의 문체반정 등으로 인해 부분적 개선에 그쳤다. 북학파가 성공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성리학을 대체할 논리적 이론과 과감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생활 편의 수준의 개혁만을 목표로 삼아, 백성들의 근본적인 변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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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붕괴 위기에 처한 조선에서 소외된 지식인들이 주도한 북학파는 청나라와 서양의 문물을 수용하여 부강한 조선과 백성의 삶 개선을 목표로 한 사회개혁 운동을 펼쳤다. 이익의 경세치용학파에서 시작하여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로 이어진 북학파는 신분제 폐지, 상업·산업 중시, 기술 수용 등 혁신적 정책을 제시했으나, 기존 주류 세력의 반발과 경직된 체제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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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행동에 관심을 갖고 공감하는 '동감(sympathy)' 능력을 인간의 본성으로 봤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으로부터 동감을 받기를 원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질서와 도덕원리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되며, 이것이 성숙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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