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인류의 거스릴수 없는 숙명” 뭐든지 원론(原論)으로 배우려고 하면 어렵다.
원체 말 많은 민주주의야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추상적 개념들이 수사학의 꽃을 피우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구체적인 내용을 들여다보자니 이거는 뭐 이야기가 밑도 끝도 없이 뭉텅뭉텅 쏟아져 나와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민주주의 실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적당히 이론적이면서도 또한 동시에 적당할 정도로 구체적인 학습서가 없을지 고민되는 순간이다.
만약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도 아직 마음에 드는 책을 딱히 찾지 못했다면 고민의 시간을 더 이상 늘리지 말고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뽑아 들기를 추천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며 역사가,법관이었던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은 당시 신생국가였던 미국을 7개월간 여행하면서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느낀 바를 옮겨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1835년 출간 당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이 책은 앞에서 밝힌 그 ‘적당’하다는 성격 때문에 학술서로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기도 하였으나,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의 풍부함과 관찰의 성실성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우수한 저작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앞에서 말한 대로 민주주의에 관한 이론과 예증을 함께 살펴보기에는 더할 바 없는 교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토크빌이 유서 있는 집안 자제임은 당연히 눈치챘을 것이다.
이름에서부터 풍기는 것처럼 명실상부한 프랑스 대귀족이었던 토크빌은,할아버지 말레제레브가 루이 16세를 변호하다가 로베스피에르의 칼날 아래 처형되면서 친척들이 줄줄이 피의 숙청을 당한 귀족집안에서 자라났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일가친척들이 워낙 많았던 탓에 상속유산은 많아져 물질적으로는 오히려 풍족하게 컸지만 정치적 격동기에서 조심스럽게 시대를 관찰하던 토크빌은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인물로 성장하였다.
토크빌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항상 할아버지 말레제레브를 꼽았는데,말레제레브는 루이 16세를 변호하였지만 동시에 민주사상을 일찍이 받아들인 개혁적 인물이기도 하였다.
토크빌은,“말레제레브는 왕 앞에서는 인민을,인민 앞에서는 왕을 옹호했다.그의 위대함은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또 잊을 수도 없는 본보기”라면서 그의 기백을 존경하였다.
그리고 그 역시도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어느 한 입장에만 편향적으로 머무르지 않고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넘나들며 세상을 날카롭게 논평하였다.
토크빌의 당차고도 예리한 시선은 ‘미국의 민주주의’ 곳곳에서 살필 수 있는데,미국 사회의 면면을 고찰하면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조건을 헤아린 대목에서 그의 명민함이 거듭 확인된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7개월 동안 미국을 돌아보고 쓴 제1권(1835년)과 5년 뒤에 출간한 제2권(1840년)으로 책이 나뉘어지는데,첫 번째 책은 미국사회의 구체적인 제도와 습속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의 성공적 사례와 조건들을 고찰하였고,그에 반해 두 번째 책은 민주주의에 관해 다소 관념적으로 접근하여 체제를 분석하였다.
그래서 두 책이 동일하게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표제를 달고 있지만 방점은 각기 달리 찍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