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논제는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 상실과 그에 따른 우리의 태도를 묻고 있다. 두 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각각의 완결된 논술문을 연결하면 또 하나의 논술문이 된다.
첫 번째 문항을 보자. ①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②이와 관련한 현대 사회의 특징적인 두 단면을 제시문 [다] [라]는 보여준다. ③제시문 [가] [나]의 논지를 요약한 후,이를 구체적 논거로 활용하여 ④[다] [라]가 시사하는 문제점 중 공통점을 중심으로 논술하라.
첫 번째 문항은 친절하게도 논의를 위한 대전제(①)와 제시문에 대한 독해 방향(②),논의 전개의 방향(③ ④)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논제처럼 독해의 방향은 물론이고 논의의 전개 방향까지 제시하는 경우,채점의 방향 역시 이러한 순차적인 문제 해결 과정이 중심이 될 것이다. 논제의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이행해 감점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①의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논의의 핵심은 인간의 실존적 상황 변화다. 그러므로 각각의 제시문을 인간의 실존적 상황 변화라는 관점에서 독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시문 (가)는 인간이란 관계에 의해 그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과 관계하는 것이며,동시에 타자와 관계하는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시문 (나)도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제시문 (가)보다 그 의미를 구체화하고 있다. 제시문 (나)에 의하면 인간은 '나'와 '너',혹은 '나'와 '그것'이라는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과의 관계가 인과율에 의해 지배받는다면 '너'와의 관계는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이 됨으로써 자기의 존재,보편적 존재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인간은 현실 속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현실은 본질적 존재들이 관계를 맺고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다)는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이 인간에게 자유로움을 제공하고 있지만,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 수도 있음을 문제 제기한다. 즉 인터넷을 사용하는 두 마리의 개가 주고받는 대화처럼 가상 공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다.
제시문 (라)는 세계 최초로 안면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 이러한 의료 기술의 발전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지만,동시에 다른 사람의 얼굴 모양을 갖게 됨으로써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제시문 (가)와 (나)는 인간이란 자신 혹은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관계의 목적은 어떤 인과율에 지배받지 않는 '관계' 그 자체에 있으며,이러한 관계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시문 (다)와 (라)는 과학 기술의 발달이 인간에게 새로운 의미의 자유를 제공한 듯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문제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즉 제시문 (다)와 (라)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정체성 상실과 관련해 제시문 (가)와 (나)는 그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만이 그 존재적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인간은 존재 자체로서의 기쁨이 아닌 도구적인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는 무한한 접속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관계 속에서 인간은 찾아볼 수 없다. 가상 공간은 더 이상 인간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 단지 기계적인 접속을 행하는 기계로서의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시문 (다)에서 제기하고 있는 '디지털 생활에서 비트와 아톰 간의 차이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문 (나)에서 찾을 수 있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가 '디지털이다'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아톰(Atoms:원자)은 현실을,비트(bits)는 가상 공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알프스의 빙하수가 대서양을 건너 우리 앞에 놓인 에비앙 생수가 아톰이라면 영국의 파운드 화는 비트다. 에비앙 생수 한 병이 고객의 손에 오기까지는 수 많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필요로 한다. 현실의 공간에서는 '너'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스위치 조작으로 '아바타'를 사고 파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는 삶의 개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시문 (다)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인터넷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간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제시문 (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얼굴을 제공해 새로운 삶을 열어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안면 이식 수술의 성공은 그동안 자신이 맺어온 사람들과 전혀 다른 얼굴로 관계를 맺게 됨으로써 그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디지털 시대를 거슬러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과학 기술이 인간의 삶을 점유하고,그 결과 인간의 본질이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끊임없이 요구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논의를 전개한다면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문항을 보자. ①제시문 [가] [나]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활용하여,②제시문 [마]에서 원장이 깨달은 바의 핵심 내용을 추론하라.
제시문 (마)의 내용을 살펴보면 병원장은 탈출을 시도하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낙원을 건설해 주는 것으로 탈출을 막고자 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탈출을 그치지 않았고,이를 통해 병원장은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한센병 환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병원장은 객관적으로 만족할 만한 환자들의 낙원을 꾸며 놓지만,환자들에게 그 섬은 낙원이 되지 못한다. 왜 병원장이 만든 섬의 환경이 그들에게 낙원이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②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첫 번째 문항을 해결하기 위해 살펴 보았던 것처럼 제시문 (가)와 (나)에서는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서만이 실존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제시문 (나)에서 진술하고 있듯이 그 관계란 관계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며,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를 도구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서 대할 때 서로의 존재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병원장은 이러한 관계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단지 그들을 하나의 도구로 이해하고,그들에게 객관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것만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환자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도구적인 인간 관계를 극복하지 못했고,그 결과 병원장의 낙원은 환자들의 낙원이 되지 못했다. 행복한 사회란 객관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와 그 구성원 간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며,그러한 관계만이 구성원에 대한 사회의 억압적 기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간 관계의 본질,나아가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논의할 수 있다면 무난한 답안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