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스톡홀름 근교에 가면 방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궁전을 만나게 된다.
드로트닝홀름이라는 이름의 이 궁전은 18세기에 건축된 왕궁과 넓은 정원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 궁전을 거닐다 보면 재미있는 별궁이 나오는데 그 양식이 중국풍이다.
이 이국적인 궁전은 왕비를 위한 왕의 특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적어도 당시의 유럽에서 중국풍이라는 것이 대단히 고급스럽고 값비싼 '트렌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상 속의 동양
근대 초기 유럽의 예술과 사치품을 지배한 동방 취미 풍조를 일컫는 말이 '오리엔탈리즘'이다.
본래 이 말은 동양에 대한 유럽 사회의 동경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양의 동경 대상이었던 중국은 '실재하는' 중국이었을까? 스웨덴의 이 중국풍 궁전을 가까이 다가가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중국 건물이지만 기와는 없고(단지 기와 흉내를 내기 위해 지붕에 굴곡을 주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조류(적어도 동양에는 없는)와 용(서양의 불 뿜는 용)이 동양을 상징하는 동물로 벽에 조각돼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실제 중국이 아닌 그야말로 상상 속의 중국이다.
전해 들은 풍문으로 그려낸 중국이 실제 중국과 같을 리 없겠지만,이 상상 속에서 동양의 상을 조각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근본 동기는 실제 동양을 보고 온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어 다음의 구절을 보자.
"벵골인의 신체조직은 여성과 같다고 할 정도로 유약하다.
…여러 시대 동안 그는 용감하고 대담한 남자들에게 짓밟혀왔다.
용기,독립,정직과 같은 특질들은 그의 체격과 상황에는 한결같이 적합하지 않다."
영국인의 인도인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벵골인에게서 용기 독립 정직과 같은 긍정적 가치들을 지워버리고,신체를 유약한 여성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이 관점은 그러한 벵골인을 누군가의 보호를 받고 의존해야 되는 대상,혹은 긍정적 가치를 상실한 도덕적으로 유약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이분법 속에서 상상되는 동양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관점이 일종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근대 초기 동양에 대한 이국적 취미의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동양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의 이미지 만들기 작업은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학문의 토대를 만들고 동시에 그러한 학문의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에서 식민지 원주민인 프라이데이가 자발적으로 로빈슨 크루소의 노예가 된 것처럼 동양은 서양의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그러한 이미지가 체계적으로 생산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동양에 대한 하나의 담론 체계.
그저 허구적인 날조가 아니라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의 지원사격을 받고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는 관념의 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