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제는 2005년 고려대 정시에 출제되었는데,'크고 작음의 규모'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보여주는 글들을 제시문으로 채택했다.
공통의 주제 의식을 뽑아내는 능력을 바탕으로 각각 다른 차원의 글을 수험생이 구조화해 읽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일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다.
따라서 '규모'와 관련해서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추출하고 학생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 내야 한다.
네 개의 제시문이 어떠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고,자신의 주장에 대한 주요한 논거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통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글들을 문제 제기와 대안,보론 등으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제시문 (1)은 '집단'과 '개인'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논제 전체의 주제인 '규모의 적절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집단적 가치와 질서를 준수하도록 강요받거나 억압당하는 개인은 무력감에 빠지고 좌절감에 시달린다.
현대 사회에서 '규모'에 의해 희생되는 개인의 자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큰 조직의 비인간적 규칙이 개별자의 도덕적 인간성을 고려할 수 없는 이유를 '조직의 큰 규모'로 설명하고 있다.
이때 크고 작음은 실제적인 규모,즉 '개인'과 개인의 합인 '집단'의 문제다.
이는 집단의 원리와 존재 이유가 개인의 그것과 동일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거대화가 이뤄지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국면을 '거대주의'라는 시각틀로 분석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제시문 (2)는 똑같이 '규모'를 문제 삼고 있지만,그것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문제이거나 실제적인 수치의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어떤 대상에 대한 판단은 '그것을 비교하는 대상'을 무엇으로 상정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절대적 판단에 대한 회의와 반성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할 때 기대기 쉬운 관습적 사고의 틀을 뒤흔들어 판단에 대한 내적 구조를 먼저 살피도록 요구한다.
가령 '작은 것 속에 큰 것의 구조가 숨어 있다'는 가능성이 발견될 수도 있다는 논리다.
내적 구조를 살핀다는 것은 전혀 다른 형상을 취하더라도 동일한 원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크기는 언제나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극소화경쟁이나 '나비효과'와 같은 이론들을 크기에 대한 주관적 상대주의의 한 사례로 검토함으로써 제시문 (1)이 제기한 규모의 적절성이라는 문제의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규모의 문제가 단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임을 암시함으로써 (1)의 문제의식에 대해 정반대의 논리를 세울 수 있다.
규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거대주의가 다른 축에서는 극소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른 한편으로는 (1)에 대한 보론으로 읽힐 수도 있는 관점,즉 극소화에 대한 추구를 결국 거대주의의 다른 한 측면으로 읽을 수도 있다.
제시문 (3)은 큰 규모의 집단에 의해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방안을 시사해준다.
소집단,즉 '대면 집단'을 통해 현대사회의 거대 집단의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제시문 (1)과 제시문 (2)가 보여준 문제의식을 함께 포괄하면,모든 종류의 거대화는 '추상화'라는 과정과 분리시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현대 사회의 추상적 조직체를 어떻게 구체적인 생활의 차원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가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제시문 (3)이 제시문 (1)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제시문 (3)에서 시사한 '대면성'이라는 개념은 제시문 (1)에서 제기한 '사람의 손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시문 (4)는 다른 세 개의 제시문과 달리 동양고전에서 출제됐다.
크고 작음의 문제를 개별자의 능력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하고,초월적 세계에 대한 혜안을 보여주는 글이다.
즉 '규모'의 문제는 주체의 포용 능력이나 시야의 문제로 환원돼 "큰 뜻을 품어라"는 교훈과 지혜를 전해준다.
여기서 큰 것과 작은 것은 비유적 차원에서 제시된다.
실제적인 규모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크기를 문제 삼는 주체의 태도를 문제 삼아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방식이다.
제시문 (1)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문 (3)의 시각으로 해결하는 하나의 시각이 있다면,제시문 (4)의 시각을 통해 제시문 (2)의 상대적인 규모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반대로 내적 구조로서의 '큰 것'이 갖는 의미를 읽는다면,'몸집이 크면 그를 받아들일 공간도 커야 하고 정신이 위로 비상하려면 그 경지 또한 높아야 한다'는 진술은 안과 밖,개인이나 집단을 융화시키고 포괄할 수 있는 '크기'를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규모의 문제를 접근할 때 주의하거나 유념해야 할 점을 시사해준다.
개별자의 존재 의의나 소집단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큰 집단의 중요한 역할이나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시문 (2)에서 상대적 인식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제시문 (4)의 시각은 현대사회의 개인과 집단의 규모를 문제 삼을 때,거대집단을 통해 폐해만을 읽으려고 하는 것,가령 국가의 존립가능성이나 법적 통제 자체를 부정하는 논리가 갖는 위험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상대적 가치를 보여주는 제시문 (2)와 (4)는 모두 거대규모에 대한 한계와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는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논술문의 집필 방향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있다.
학생들로서는 현대과학이 증명해 주고 있는 '외적 크기'의 불확정성이나 동양고전의 신화적 상상력이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크기'에 대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논술문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편의상 논술문의 집필방향을 크게 '현대 산업사회의 거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극복방안'이라는 주제와 '현대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크기'라는 주제로 양분해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현대사회의 거대주의가 대중과 개인을 좌절감에 빠뜨렸다는 인식을 우리 주변의 사례들을 통해 문제제기하고,제시문 (1)과 (3)이 보여주는 '대면성'과 '손길'이라는 개념을 통해 거대주의가 억압적일 수밖에 없는 사실을 설명한 뒤 '대면성'과 '손길'이 가능한 크기를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논술문을 집필하면 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거대주의의 폐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되,무조건 큰 것이 나쁘다는 방향으로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다른 한편 '현대사회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크기'라는 주제로 논술문을 쓸 때에는 도서관 하나의 장서가 다 들어갈 수 있는 손가락 크기의 마이크로 칩처럼 외적인 크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크기에 대한 획일화와 강박의 구조를 극복하는 방법은 더 넓고 높은 차원에 다다르는 것이라고 역설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진정한 '큼'이 인간의 정신과 내면으로부터 비롯돼야 함을 보여주되,실제 사회에서 거대주의가 보여주었던 문제점들을 외면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언제나 주장하는 논리와 반대하는 논리 사이에서 맹목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규모' 또는 '크기'라는 공통된 인식의 지점을 발견하고,공통된 주제에 대한 각각의 제시문들의 견해 차이를 학생 자신의 논리를 중심으로 구성하고,주장과 논증의 방식으로 논술문을 작성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특히 동양 고전의 신화적 상상력이나 현대 과학의 불확정성이 보여주는 초월적인 '크기'개념 때문에 글쓰기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노과학의 미시세계와 나비효과의 우연성,그리고 천문우주학의 광대함은 쉽사리 통어하기 어려운 규모와 차원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고통받는다고 이야기하는 '거대주의'가 그 자체로 크기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소통 불가능성과 추상적 비전이라는 것에 놓여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나름의 주장과 논거를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