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 양대산맥…그들의 한마디에 세계경제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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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용평가 양대산맥…그들의 한마디에 세계경제 요동

생글생글2012.11.08읽기 9원문 보기
#신용평가사#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무디스#글로벌 금융위기#신용등급 강등#유럽 재정위기#서브프라임 모기지#부채담보부증권(CDO)

스탠더드앤드푸어스-무디스‘국제금융시장의 저승사자.’ 국제금융시장에서 서슬퍼런 권력을 휘둘러온 신용평가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도를 넘어서는 위세에 대한 비아냥도 녹아 있다. 최근엔 유럽 국가와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급격히 하향 조정해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비난도 받는다. ‘세계경제의 파수꾼’ ‘갱도 안의 카나리아’라는 그동안의 찬사가 무색할 지경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국제 신용평가업계의 양대 산맥이다. 이들 회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미국 금융회사들의 위험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S&P와 무디스가 최근 ‘강성’ 신용평가 보고서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세계 신용평가시장을 40%씩 양분하고 있는 이들 회사는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한치 양보없는 격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작년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갑작스레 강등됐다. S&P가 ‘한방’을 날린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쇼크에 빠졌고 증시는 요동쳤다. S&P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무디스와의 신경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S&P가 시장점유율에서 무디스에 밀리자 ‘오버’를 했다는 것이다. 무디스는 자존심으로 대응했다. 미국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부채가 크더라도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감당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무디스는 설명했다.

상대방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린 적도 있다. S&P는 2010년 무디스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렸다. 신용등급이 조만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였다. 이유는 ‘미국의 금융규제 개혁 입법에 따라 신용평가사들의 비용이 늘고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럽 재정위기 때에도 무디스와 S&P는 충돌했다. 무디스가 유럽 국가들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공격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평가에서 무디스보다 다소 우위에 있었던 S&P를 의식해 좀 더 민감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S&P가 유럽 국가에 대한 등급 하향 조정을 단행하면 무디스는 하향 폭을 더 늘리는 식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예컨대 포르투갈 국채를 한번에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낮췄다. 독일의 신용등급 전망은 무디스가 먼저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S&P는 곧바로 “독일은 경제·금융 부문의 큰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있다”며 “AAA에 대한 안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한다”고 맞대응했다. ●"위기가 닥칠 때 뭐했나"비판도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대한 두 회사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금융·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좋은 등급’을 남발하다 위기가 닥친 뒤에야 신용등급을 경쟁적으로 강등시키는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2008년 미국 하원 청문회장에 불려나간 데번 샤르마 전 S&P 회장과 레이먼드 맥대니얼 전 무디스 회장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지기론)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2007년 초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문제가 대두됐으나 이들 회사는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 최고 등급을 그대로 유지했다. CDO의 신용등급 거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 금융시장에 충격이 있을 때마다 신용평가회사 책임론이 도마에 올랐다. 2001년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미국 에너지업체 엔론이 그랬다. 파산 직전까지 이 회사는 투자적격 등급을 유지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공기업 캘리포니아 유틸리티스도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투자적격 등급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반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02년 일본 재무성은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부여한 일본 국채의 등급이 과소평가됐다며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중국은 작년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신용평가회사를 키우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S&P와 무디스 등이 경기 순환주기에 맞춰 평가를 하고 있어 제대로 미래를 전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중앙은행장이 대놓고 국제 신평사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은 이례적이다.

●철도채권 평가가 모태S&P와 무디스의 성장 배경은 비슷하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철도산업이 번성하면서 철도회사 신용을 평가할 필요가 생겼다. S&P가 무디스보다 40년 빠른 1860년에 설립됐다. S&P 창업자인 헨리 바넘 푸어는 철도회사 투자자들을 위해 ‘미국 철도 투자 매뉴얼’을 선보였다. 막대한 투자비가 필요했던 미국 철도회사들은 은행 대출과 투자자 모집이 어렵게 되자 회사채를 발행했다. S&P는 투자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주요 철도회사의 재무와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업무’를 했다. 1900년 존 무디가 설립한 무디스는 재무정보를 제공하는 차원을 넘어 기업에 대한 신용평가 사업을 시작했다.

신용평가 업무는 무디스가 S&P보다 한발 앞선 셈이다. 무디스는 1909년 ‘산업과 기업 증권 매뉴얼’을 발간하고 철도회사가 발행한 채권에 대한 신용위험을 최초로 평가했다. S&P는 1916년 모기업 푸어스 퍼블리싱이 회사채 평가사업에 나서면서 신용평가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국가공인 평가기관 S&P와 무디스는 한배를 탄 사례도 많았다. 양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증폭된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이들 스스로가 잘 알았기 때문이다. 1929년 대공황 발발은 두 회사가 급성장하는 발판이 됐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미국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기업 도산이 속출했다. 그러나 두 회사가 높은 등급을 부여한 회사들의 부도율은 눈에 띄게 낮았다. 1970년 펜센트럴 철도회사 파산도 호재로 작용했다. 투자 대상의 신용위험을 미리 알고 싶었던 투자자들은 신용평가회사를 찾았다. S&P와 무디스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커진 것은 1975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S&P, 무디스, 피치를 국가공인 신용평가기관(NRSRO)으로 지정하면서부터다. 채권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미국 증권사, 연금, 보험 등은 의무적으로 신용평가를 받게 됐다. 정부가 감독기능을 이들 3개 민간 신용평가회사에 넘긴 셈이다.

1980년대 뮤추얼펀드가 활성화하면서 S&P와 무디스의 활동 영역은 더 넓어졌다. 미국 투자은행(IB)들은 전 세계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인수해 뮤추얼펀드에 팔았다. 신용등급의 필요성은 많은 국가로 확대됐다. 1990년대 들어 다국적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늘고 다양한 금융상품이 등장한 점도 S&P와 무디스의 수익성 향상과 영향력 강화에 긍정적이었다. 작년 기준으로 S&P는 23개국 8500명의 직원을, 무디스는 28개국 65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신용평가사업 부문 매출은 S&P가 18억달러로 무디스(16억달러)를 앞선다. ●한국과는 악연도S&P와 무디스는 한국과 악연이 있다.

우리나라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과정의 서곡은 국제 신평사의 등급 하락이었다. 발단은 S&P였다. S&P는 1997년 10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췄다. 같은 해 11월에는 A-로 두 단계 하향 조정했다. 12월에는 BBB-로 끌어내리더니 열흘 뒤에는 한번에 네 단계를 강등시켜 B+를 부여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부적격 국가로 몰아낸 것이다. 무디스도 S&P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S&P와 무디스는 경쟁적 롤러코스터식 등급 강등을 단행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서둘러 한국을 빠져나갔다. 결국 한국은 IMF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S&P는 무디스와 피치에 비해 한국의 신용등급을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 S&P가 부여한 한국 신용등급은 A로 무디스(A1)나 피치(A+)에 비해 한 단계 낮다. 북한 핵 개발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요인에 비중을 두고 평가하고 있다. 신용등급 평가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의심받는 일은 여전히 많다.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자체 신용평가회사를 만들어 S&P와 무디스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를 안정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킨다는 이유로 S&P와 무디스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은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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