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앤드푸어스-무디스
‘국제금융시장의 저승사자.’ 국제금융시장에서 서슬퍼런 권력을 휘둘러온 신용평가사들을 일컫는 말이다. 도를 넘어서는 위세에 대한 비아냥도 녹아 있다. 최근엔 유럽 국가와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급격히 하향 조정해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비난도 받는다. ‘세계경제의 파수꾼’ ‘갱도 안의 카나리아’라는 그동안의 찬사가 무색할 지경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는 국제 신용평가업계의 양대 산맥이다. 이들 회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야기한 미국 금융회사들의 위험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S&P와 무디스가 최근 ‘강성’ 신용평가 보고서를 쏟아내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세계 신용평가시장을 40%씩 양분하고 있는 이들 회사는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한치 양보없는 격전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작년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이 갑작스레 강등됐다. S&P가 ‘한방’을 날린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쇼크에 빠졌고 증시는 요동쳤다.
S&P가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무디스와의 신경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S&P가 시장점유율에서 무디스에 밀리자 ‘오버’를 했다는 것이다. 무디스는 자존심으로 대응했다. 미국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부채가 크더라도 경제 규모와 비교하면 감당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무디스는 설명했다. 상대방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린 적도 있다. S&P는 2010년 무디스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렸다. 신용등급이 조만간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였다. 이유는 ‘미국의 금융규제 개혁 입법에 따라 신용평가사들의 비용이 늘고 수익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럽 재정위기 때에도 무디스와 S&P는 충돌했다. 무디스가 유럽 국가들과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공격적으로 하향 조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평가에서 무디스보다 다소 우위에 있었던 S&P를 의식해 좀 더 민감하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S&P가 유럽 국가에 대한 등급 하향 조정을 단행하면 무디스는 하향 폭을 더 늘리는 식으로 받아치기도 했다. 예컨대 포르투갈 국채를 한번에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낮췄다. 독일의 신용등급 전망은 무디스가 먼저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S&P는 곧바로 “독일은 경제·금융 부문의 큰 충격을 흡수할 능력이 있다”며 “AAA에 대한 안정적 등급 전망을 유지한다”고 맞대응했다.
●"위기가 닥칠 때 뭐했나"비판도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대한 두 회사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커져갔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가 하는 일이라는 게 금융·경제위기가 발생하기 전에는 ‘좋은 등급’을 남발하다 위기가 닥친 뒤에야 신용등급을 경쟁적으로 강등시키는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2008년 미국 하원 청문회장에 불려나간 데번 샤르마 전 S&P 회장과 레이먼드 맥대니얼 전 무디스 회장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지기론)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2007년 초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문제가 대두됐으나 이들 회사는 이를 기초자산으로 만든 파생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 최고 등급을 그대로 유지했다. CDO의 신용등급 거품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다.
금융시장에 충격이 있을 때마다 신용평가회사 책임론이 도마에 올랐다. 2001년 회계부정으로 파산한 미국 에너지업체 엔론이 그랬다. 파산 직전까지 이 회사는 투자적격 등급을 유지했다. 결국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공기업 캘리포니아 유틸리티스도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기 직전까지 투자적격 등급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반발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2002년 일본 재무성은 국제 신용평가회사가 부여한 일본 국채의 등급이 과소평가됐다며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중국은 작년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 신용평가회사를 키우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장은 “S&P와 무디스 등이 경기 순환주기에 맞춰 평가를 하고 있어 제대로 미래를 전망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중앙은행장이 대놓고 국제 신평사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것은 이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