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가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은 단지 긍지와 기쁨만이 아니라 용기와 자신감의 원천일 수도 있다. 정체성 개념이 이웃을 사랑하자는 대중적 고취에서부터 사회자본과 공동체주의적 자아 규정이라는 고차원적 이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찬사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체성은 또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것도 닥치는 대로 죽일 수 있다. 한 집단에 대한 강한, 그리고 배타적인 소속감은 다른 집단과의 거리감과 분리의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집단 내의 연대성은 다른 집단과의 불화를 부채질할 수 있다. 우리가 이웃이나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 또는 동료 시민이나 같은 종교의 신도 등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할 때 정체성 의식은 그 관계의 강도와 온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정 정체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연대감을 풍부하게 하고 서로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에 대한 최근 문헌을 살펴 봐도, 동일한 사회공동체에서 다른 사람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모두의 삶을 얼마나 더 좋게 만들 수 있는지는 충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그래서 일종의 자원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직접적 대면관계와 연대를 통해 서로에 대해 매우 훌륭한 일을 해주는 잘 통합된 공동체가, 그 지역으로 들어온 이주자들의 창문에는 벽돌을 던지는 바로 그 공동체일 수 있다. 배제라는 불행은 포용이라는 선물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을 수 있다.
나 나는 공자, 석가,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 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략…) 혈통(血統)의 조국을 부인하고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는 이데올로기는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左右翼)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風波)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사는[生] 것이다.
(…중략…)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다 지난해 지방 작은 도시의 한 중학교 담임교사 양지현 씨는 학교폭력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학생 간 친밀도(親密圖)를 그렸다. 일진과 피해학생의 관계, 학생 간 친분 관계 등을 측정해 봤다. 그런데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다문화가정 학생 나민식 군은 친밀도에 아예 없었다. 학교에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싫어하는 친구도 없는 ‘무관심’ 대상이었다. 양 교사는 “민식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종의 ‘섬’ 같은 존재였고, 친구들이 민식이를 유령 취급했다”고 했다. 일종의 ‘전따’였다.
다문화가정 학생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학교폭력도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학생들은 이국적인 외모와 서툰 한국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집단 따돌림이나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다문화가정 학생보다 해외에서 태어나 자라다 한국에 들어온 ‘중도 입국’ 학생들이 더 많은 폭력을 당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