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 조동근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 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1월11일자 A39면
자연현상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있듯이 경제에도 체제에 관계없이 공히 적용되는 철칙(iron law)이 있다.
그것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라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은 주술(呪術)이 아닐 수 없다.
그 같은 혜택을 누리는 국민을 계속 늘릴 수 있다면 우리는 지상낙원에 살고 있음이 틀림없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포퓰리즘적 기만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을 수 있다"는 사회주의 비전이다.
포퓰리즘에 기초한 약속은 경제철칙에 반(反)하기 때문에 허구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허구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공익 또는 약자보호라는 명분 하에 선의(善意)로 설계된 정책을 통해 성취될 것으로 기대되는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그 기대에 '정반대'되는 것을 예측하면 된다.
그러면 거의 틀림없이 그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예컨대 도움을 주고자 했던 계층의 사람을 장기적으로 어려움에 빠지게 한다.
이처럼 포퓰리즘은 왜곡(歪曲)된 결과를 초래(招來)한다.
포퓰리즘은 정치인에게 있어 빠지기 쉬운 함정이자 유혹이다.
좋은 효과(善)만 드러내보이고 부정적 효과(惡)는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작이 가능한 이유는 '선'(善)은 쉽게 드러나고 가시적이지만,'악'(惡)은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날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적 효과가 쉽게 인지되지 않음은 그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대중적 지지도를 높이되 그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려는 정치인에게 포퓰리즘은 어찌 보면 합리적 선책일 수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포퓰리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큰 정부론'은 고용과 복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책임론을 견지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그 증거다.
이는 정부가 최후의 고용자(last resort)임을 자임한 것이다.
정부는 그 돈을 어디에서 마련하는가.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에,정부가 쓰는 만큼 민간부문의 지출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정부의 고용증가는 일정부분 민간부문의 고용을 밀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