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아이디어, 벤처에선 살고 대기업선 죽는 이유
디지털 이코노미

혁신 아이디어, 벤처에선 살고 대기업선 죽는 이유

생글생글2022.04.07읽기 5원문 보기
#상전이 현상#디지털 경제#혁신#스타트업#대기업#조직 구조#《룬샷》#사피 바칼

(48) 디지털 경제와 혁신설계

구조의 작은 변화는 조직의 경직성을 유연성으로 바꿔 혁신 가능케 해.

레이더의 발견은 우연이었다. 미국 해군의 무선통신 과학자인 리오 영과 호이트 테일러가 고주파를 활용한 통신을 실험하던 중 ‘탐지장비’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군은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을 거절,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데만 5년이 걸렸다. 1941년 12월 7일 레이더 조기 경보 시스템은 하와이에서 테스트 중이었고, 그날 일본군의 항공기 353대가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2403명이 전사했다.

‘배아 단계’의 아이디어가 묵살된 사례는 비단 레이더뿐만이 아니다. 수륙양용 트럭을 포함한 많은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혁신 초기의 아이디어는 허점투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모습이 만연한다. 노키아 직원들이 발견했던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아이디어는 경영진이 코웃음치며 묻어버렸고, 의학 연구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머크 역시 유전공학 기술을 우습게 여겼다가 업계 판도가 바뀌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흔히 기업의 이 같은 실책을 두고 대기업은 보수적이고 리스크를 회피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스타트업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어서 흥미진진한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니던 직원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 과격한 아이디어를 옹호하고 설득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변한다. 분명 ‘똑같은’ 사람이 맥락에 따라 보수주의자가 되기도, 혁신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화가 아닌 구조의 문제물리학자인 사피 바칼은 그의 책 《룬샷》을 통해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 변화를 상전이 현상으로 설명한다. 얼음덩어리 위에 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바로 얼어붙지만, 똑같은 물 한 방울을 수영장에 떨어뜨리면 다른 물과 섞여버린다. 물리학자 필립 앤더슨이 ‘많으면 달라진다’라고 표현한 것도 이 부분이다. 그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많을 뿐만 아니라 부분의 합과는 매우 다르다’라는 표현으로 액체의 유동성과 고체의 딱딱함뿐만 아니라 금속 내 전자의 독특한 행동을 설명했다. 물 분자 하나만 분석해서는 전체 집합적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 온도가 낮아지고 있는데 분자 하나가 애를 쓴다고 주변 분자가 얼어붙는 것을 막을 순 없음을 의미한다.바칼은 모든 상태는 결합하려는 힘과 무질서를 지향하는 힘 간의 대결로 정해진다고 설명한다. 즉, 온도가 내려가면 결합에너지는 강해지고 무질서의 힘은 약해진다. 어느 순간 이 두 힘의 크기가 역전될 때 물이 얼어붙는다. 즉, 시스템이 전환되는 것이다. 조직에서도 이런 두 힘이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벌인다. 돈과 지위가 대표적이다. 집단의 규모가 작을 때는 집단 프로젝트의 결과에 따라 누구에게나 큰 ‘판돈’이 걸려 있다. 작은 바이오테크 회사에서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 모두가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실패하면 실업자 신세에 처할 위험도 높다. 이렇게 큰 판돈에 비하면 승진 등으로 표현되는 지위에 따른 특전은 미미해 보인다. 반면 회사 규모가 커지면 결과에 따라 주어지는 ‘판돈’은 줄어드는 반면 ‘지위’에 따른 특전이 커진다. 두 조건의 크기가 역전될 때 시스템이 전환된다. 조직이 커지고 안정될수록 같은 사람으로 구성된 동일한 집단임에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퇴짜 놓는 이유다. 혁신보다 설계가 중요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물에서 딱딱한 얼음으로 변하는 상전이 현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현 상태가 액체인지, 고체인지에 따라 같은 행동도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물이 가득 찬 커다란 욕조의 표면을 망치로 내려칠 경우 물이 튀면서 망치가 액체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지만, 같은 물을 얼린 다음 내려치면 표면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리더가 혁신을 강조한다. 자랑스럽게 조직도에 박스를 하나 더 그려넣고, 새 건물을 임차해 혁신연구소 간판을 내건다. 하지만 온도가 떨어지는데, 분자 하나가 절박하게 애쓴다고 해서 주변이 얼음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는점을 낮출 순 있다. 눈이 오는 날 소금을 뿌리면 눈이 딱딱한 얼음이 되기 전에 녹도록 만들 수 있다. 즉, 구조의 작은 변화를 통해 조직의 경직성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이 변화하는 시기다. 혁신의 핵심은 문화나 새로운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구조와 그 설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팰로앨토 신화…좋은 투자환경이 혁신 이끌어
디지털 이코노미

팰로앨토 신화…좋은 투자환경이 혁신 이끌어

팰로앨토 같은 도시 지역의 높은 인구밀도와 첨단산업 집중이 벤처자본 투자를 유치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요소다. 이러한 도시 집중이 주택 부족과 불평등 문제를 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대도시 지역에서 경제적 이동성이 더 높으며 자녀 세대의 소득 상향 이동이 혁신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따라서 도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좋은 투자환경을 유지하여 혁신 엔진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3.11.02

from the get-go는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다는 의미
영어 이야기

from the get-go는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다는 의미

국경 없는 경제 시대에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 결과 창업자의 90%가 해외 확장을 고려 중이다. 당근마켓과 팀블라인드 같은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초기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추진했으며, 스마트폰의 세계적 확산이 이러한 해외 시장 진출을 수월하게 했다.

2022.07.07

혁신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를 토대로 하죠
4차 산업혁명 이야기

혁신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를 토대로 하죠

일본 반도체산업의 쇠락 사례를 통해 기술경쟁력만으로는 혁신이 아니며, 시장 수요 변화를 읽고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이 중요함을 보여준다. 혁신은 기술 외적 요인인 마케팅, 고객 이해, 가격경쟁력 등이 어우러져 완성되며,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사회·경제적 요구에 대응하는 연속적 발전이다.

2019.11.07

혁신을 위한 조직 시스템 설계의 필요성
4차 산업혁명 이야기

혁신을 위한 조직 시스템 설계의 필요성

혁신은 개방적인 조직문화만으로는 나타나지 않으며, 노키아의 사례처럼 혁신적 아이디어가 조직 내에서 무시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에 있으며, 혁신을 원한다면 문화 변화가 아닌 자유로움과 결합의 힘을 역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 변화와 인센티브 체계 설정이 필요하다.

2020.10.22

미국은 혁신에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하는 이유는
디지털 이코노미

미국은 혁신에 성공하고 일본은 실패하는 이유는

미국은 1960~70년대 IBM과 AT&T에 대한 반독점 소송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독립시켜 기술 혁신을 지속했지만, 일본은 NTT와 NEC의 독점을 용인하며 새로운 기업 진입을 막아 2000년대 이후 혁신 동력을 잃었다. 반독점 규제가 약화된 현재 구글, 아마존 등 거대 기술 기업의 독점화가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집중과 사회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새로운 혁신을 위해서는 독점 규제가 필수적이다.

2021.04.22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