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해봤어?"…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를 호령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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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해봤어?"…한국의 조선산업이 세계를 호령하는 까닭

오형규 기자2007.06.27읽기 8원문 보기
#기업가정신#현대중공업#조선산업#경쟁우위#노사분규#산업평화#기술투자#세계 1위

"이봐,채금자. 해봤어?"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생전에 늘상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실무 책임자(정 회장은 채금자라고 발음했다)가 "어렵다"는 보고서를 올리면 '해보고 나서 그런 소리를 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정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울산 미포만에 세계 1위의 조선소를 건설해냈다. 이렇듯 '기업가'의 등장은 국가 경제에서 단순히 한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낸다. 따지고 계산하고,꼼꼼하기만 해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기도 하다. 한국의 조선산업이 독보적인 세계 1위로 5대양을 누비는 것은 이 같은 기업가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고대 기업가인 해상왕 장보고부터 오늘날 정주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조선산업을 독보적인 세계 1위로 만들어낸 요인을 살펴보자.◆해상왕 장보고의 기업가정신9세기 통일신라의 무역은 해적들의 노략질로 인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당시 당나라에 노예로 끌려갔던 장보고는 뛰어난 무예로 관직에까지 올랐다가 신라로 귀국,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했다. 한·중·일 3국의 무역을 주도한 청해진은 해상 상업제국이었다. 각국 정부의 공식 사절 안내에서부터 여객 운송,선박 건조·수리,통역 및 선원 제공,종교·문화 지원 등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 장보고의 경쟁력은 유형적인 것보다 무형적인 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정확한 항로 파악,항해술과 조선술,각 지역의 산물과 거래 방식에 대한 지식 등은 해양 무역에서 절대적인 경쟁우위 요소로 평가된다. 이 같은 해양에서의 경쟁우위는 장보고의 사후 계승되지 못한 채 중국,일본에 뒤처져 조선시대 이순신을 제외하곤 한국에서의 해양산업은 1200년 가까이 잊혀졌다. ◆사진 한장과 500원짜리 지폐한국의 조선산업이 부활한 1970년 12월 정주영 회장의 첫 선박 수주는 그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그는 조선소의 도크도 없이 부지만 확보한 채 그리스로 날아갔다. 그는 선주에게 조선소가 들어설 미포만 모래사장의 항공사진과 외국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 도면을 보여주며 맡겨 달라고 졸라댔다.

못 미더워하는 선주에게 거북선이 그려진 당시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한국인은 예부터 배를 잘 만들었다고 설득했다. 결국 선주는 26만t급 유조선 두 척을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에 맡겼다. 그때까지 한국에서 만들어본 가장 큰 배가 1만7000t이었으니 불가능하다는 게 국내외의 지배적인 예상이었다. 정 회장은 조선소 건설과 배 건조를 1972년 3월 동시에 착공해 끝내 납기를 지켰다. 1984년 서산 간척지의 막바지 물막이 공사 때는 물살이 워낙 빨라 무척 고전하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정 회장은 폐(廢) 유조선에 물을 채워 가라앉히는 기발한 유조선 공법을 제시했다.

이것이 외신에 대서특필됐고,세계 토목공학 교과서에 추가된 '정주영 공법'이다. 이렇듯 정 회장은 여간해선 '안되는 일'을 인정하지 않았다,"되는 방법을 찾아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돼.내가 해봤더니 그래."◆한국 조선산업에도 위기가 있었다한국의 조선산업은 늘 일본을 좇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일본이 1980년대 조선산업에 투자를 등한히 하는 틈을 타,현대중공업을 비롯 대우조선,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업체들이 급속히 확장에 나섰다. 외형성장 과정에서 1987년부터 분출된 노사분규 여파로,정주영 회장이 한때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에게 감금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파업사태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실제로 거제도의 대우조선을 폐쇄하고,배 건조용 도크를 수족관으로 바꿔 휴양지를 만들 생각까지 했었다. 덩치만 크고 골치 아픈 게 조선업체였던 셈이다. ◆과감한 투자,산업평화,그리고 세계 1위1990년대 중반부터 노사분규가 수그러들자 조선업계는 때마침 세계 조선경기 호황에 힘입어 일대 중흥기를 맞는다. 일본이 투자 과잉상태로 보고 시장예측을 잘못했던 것과 달리,한국 조선산업은 반대로 미래에 대비해 원천기술과 설계인력 확충에 과감히 투자한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노사화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제 실력을 발휘한다.

10여년째 무(無)분규를 이어가는 한국 조선산업은 일본을 제치고 2000년부터 수주량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부가가치가 낮은 대형 벌크선은 수주를 기피할 만큼 일감이 넘쳐나,고부가 LNG운반선에 주력하며 초호화 크루즈선 건조에도 뛰어들었다. 최근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이지스함(최첨단 군함)까지 세계 다섯 번째로 만들어 진수식을 가진 것은 획기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올 들어 중국이 저가 물량공세로 수주량 면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은 "중국이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을 추격하고 있지만 신개념·차세대 복합 고(高)부가가치 선박을 개발하고,진입 장벽을 높이면 2020년 이후까지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형규 한국경제 연구위원 ohk@hankyung.com▶참고 도서=△박정웅,'정주영-이봐 해봤어? '(2007 개정판,FKI미디어) △정규재 외,'김우중 비사'(2005,한국경제신문사) △한국경제교육학회,'차세대 경제'교과서(2007,교학사)▶도움말 주신 분=김미선 선생님(대전 유성고),김윤희 선생님(경기 하남고),문명희 선생님(광주 상무고)-----------------------------------------------------------■합리적 인간과 합목적적 인간기업 최고경영자(CEO)에 관한 프로필 기사에는 "저돌적인 불도저형"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강한 추진력으로 큰 성과를 내지만 때로는 사업을 추진하다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반면 경제부처 장·차관 등 경제관료들의 프로필에는 "꼼꼼하고 치밀한 관리형"이란 표현이 많다. 매사에 빈틈없는 일처리가 강점이지만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는 소극적인 스타일이다.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이런 불도저형과 관리형의 견제와 균형이 교대로 역할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발연대에는 관료들 스스로가 기업가처럼 행동한 경우도 많았다. 기업인들은 나라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공장을 세우고 수출시장을 넓혔다. 기업인은 목적에 부합된다면 다소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결단도 주저하지 않는다.

사업이 실패할 99개의 위험요소보다 성공할 1개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다. 그러나 관료는 최종 목적보다는 과정과 절차의 합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업가는 '합목적적 인간형',관료는 '합리적 인간형'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업가와 관료그룹은 마찰과 충돌의 관계로 탈바꿈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대우그룹 해체 과정이다.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세계경영을 모토로 중앙아시아,동구권 등의 시장을 선점해 '킴기즈칸'(김우중+칭기즈칸)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재무건전성이 우선시되면서 경제관료들에게 대우는 사상누각으로 비쳐졌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기업인과 '합리적 과정과 절차'를 중시하던 관료 간의 불가피한 충돌이었다. 이는 산업논리 대 금융논리의 갈등이기도 하다. 결국 대우그룹은 사라졌고,대우 계열사들은 뿔뿔이 다른 주인을 찾아 매각됐다. 이제 국내 기업들은 대우가 10여년 전에 개척한 시장에서 뒤늦게 해외 유수 기업들과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는 지금도 많은 기업인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부채비율,영업이익률 등 금융의 잣대(합리적 기준)만으로는 평가하기 어려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다. 기업가는 소극적 균형이 아니라 적극적 확대균형을 추구하며 실패의 두려움이 아니라 성공의 가능성을 향해 뛰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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