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으로 금본위제 흔들리며 국제금융 마비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1차 세계대전으로 금본위제 흔들리며 국제금융 마비

김동욱 기자2022.08.18읽기 5원문 보기
#금본위제#금태환성#기축통화#제1차 세계대전#국제금융 마비#파운드 스털링#달러#인플레이션

(57) 금본위제 ( 下 ) 게티이미지뱅크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 소위 프랑권 국가들이 1870년대 금본위제로 이행했고 미국도 1900년 금본위제를 채택했다. 1900년이 되면서 유럽과 북미, 일본, 아르헨티나까지 금에 기반을 둔 화폐체제를 구축했다. 고전적 금본위제가 자리잡은 것이다. 이때에는 지폐를 통화당국에 들고 가면 언제라도 법이 정한 무게의 순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1914년 이전 영국에선 파운드당 순금 113.0016그레인으로 교환됐고, 미국에선 달러당 순금 23.22그레인의 비율로 태환됐다.

금태환성을 보장하기 위해 영국은 1844년 ‘은행허가법’에서 영국중앙은행의 은행권 발행액이 금 보유액에 1400만 파운드를 더한 금액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독일도 1876년 관련법을 통해 독일제국은행이 발행하는 지폐량은 제국은행 금 보유액 및 재무성 증권 보유액의 세 배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금에 기반을 둔 안정된 통화체제가 갖춰지면서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인플레이션 위협이 약해졌다. 금본위제 아래 통화정책은 금의 화폐가치를 유지한다는 준칙에 따라 이뤄졌고, 이 준칙이 잘 지켜지면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이후에 비해 훨씬 적었던 것이다.

덴마크의 경제학자 윌리엄 샤를링의 분석에 따르면 1873~1886년 사이 유럽 주요 은행의 귀금속 보유량이 33억2900만 라이히스마르크에서 60억440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증가하는 동안 이 귀금속을 본위로 발행된 지폐 액수는 113억32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서 103억890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오히려 감소했다. 이처럼 19세기 후반 금과 은 모두 생산이 늘었지만 두 금속의 위상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 금본위제로의 이행 배경에는 영국의 힘이 있었다. 바로 금의 가치가 지고지선해서가 아니라 최강국 영국이 금본위제를 적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중세부터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영국은 은본위제 국가였다.

영국의 화폐 단위인 ‘파운드 스털링’은 법적으로는 스털링의 무게를 재는 단위에서 기원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중앙은행이 전비 조달에 전력하는 과정에서 은본위제가 폐지되고 1816년 금본위제가 선택됐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시행하자 1870년대 영국의 재정 지원을 받고자 하는 많은 나라는 금본위제로의 이행을 서둘렀다. 또 이들과 교역하던 많은 나라도 불이익을 줄이려고 금본위제를 택했다. 당시 최대 교역국으로, 주요 운송국이며 해외 자본 수출국이던 영국의 화폐가 사실상 국제 지급수단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점이 배경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금본위제의 안정성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흔들리게 된다. 파운드에 기반을 둔 안정은 무너지고 각국 시민은 전시에도 화폐로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금을 확보하려고 앞다퉈 돈을 금으로 바꿨다. 이에 각국 정부는 서둘러 금태환을 중지하면서 자연스레 국제통화제도가 마비됐다. ‘금본위’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각국 정부는 금본위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영국과 러시아는 금의 생산을 높여 금 보유액을 높이는 정책을 펴게 된다. 당시 영국은 식민지인 남아프리카와 호주의 금광을 최대한 이용하게 된다.

반면 대규모로 금이 산출되는 해외 식민지가 없는 프랑스와 독일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금을 애국적 호소와 함께 모아들여 부족분을 충당했다. 외환위기 당시의 한국이 연상되는 조치다. 이렇게 모은 금이 웬만한 금광과 견줄 만했다고 전해진다. 독일은 또 벨기에와 루마니아 등 점령 지역에서 금을 몰수해 자국의 금본위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너무나 당연시되던 달러 기축통화 위치에 금이 갔다. 과거 영국의 힘을 바탕으로 유지되던 금본위제와 파운드 기축통화가 무너지게 된 데는 영국의 지도력 상실, 그에 따른 신뢰와 권위 상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달러의 위상이 예전만 하지 않다는 것을 보면서 반복되는 역사의 무서움을 느낀다. 금이나 은에 대한 인류의 애착은 인류사 불변의 현상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냉정한 현실정치의 역학이 자리하고 있다. 정치권력이 안정될 때만 금이나 은도 다른 쇠붙이와 달리 제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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