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내일 위해 오늘 무언가를 하라"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52)은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벨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민 1.5세대의 한국인이다.
벨연구소는 어떤 곳일까.
벨연구소는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1925년 설립된 민간연구소다. 전기통신 부문과 기초과학기술을 주로 연구한다. 지금까지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3만개가 넘는 특허를 갖고 있다.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연구소가 2005년 김종훈을 삼고초려 끝에 사장으로 ‘모셔왔다’. 벨연구소 측이 수장 자리를 3개월이나 비워둔 채 김 사장이 승락하기만을 기다렸으니 삼고초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김종훈은 가난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가족이 정착한 곳은 메릴랜드의 빈민촌.
언어장벽에 절망한 그는 학교에서는 외톨이였다.
가난은 여전해 밤에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밤새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소년 김종훈은 야근이 끝나면 바로 학교에 갔다. 모자란 잠은 수업 후 2시간가량 자는 게 전부였다.
이민은 역경의 나날이었다. 소년은 좌절하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불가능과 싸웠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그는 죽기살기로 공부해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드디어 고교 졸업. 전교 2등을 했다.
몸에 밴 부지런함은 석사와 박사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명문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보통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최단기인 2년 에 해치웠다. 이 대학에선 아직도 전설로 통한다.
논문 준비에 파묻혀 새벽 2시를 오후 2시로 착각,점심을 먹으려 했던 일화도 있다.
“밝을 줄 알고 나갔는데 깜깜하더라고.” 그는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오전 9시 전에 성취하라.” 결국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2세가 된 1992년 김종훈은 벤처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이름은 유리시스템즈였다. 큰 딸 이름(유리)을 땄다. 그는 대뜸 건물을 통째로 사서 회사를 차렸다.
“4분의 1만한 크기로도 충분했지요. 하지만 전 5년 에 10억달러 가치가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통째로 샀죠. 꿈 같은 목표였죠.”
그는 거물급 인사를 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제대로 성장도 안한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거물급 이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 그 사람이 바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었다.
페리 장관은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회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이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가 창업 당시 주목한 분야는 ATM 통신기술 장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