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
기술이 국력이다

(5)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

고기완 기자2011.11.10읽기 7원문 보기
#벨연구소#노벨상#특허#벤처회사#ATM 통신기술#루슨트테크놀로지#기업 인수합병(M&A)#광네트워크

"더 나은 내일 위해 오늘 무언가를 하라"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52)은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벨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이민 1.5세대의 한국인이다. 벨연구소는 어떤 곳일까. 벨연구소는 전화기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의 이름을 따 1925년 설립된 민간연구소다. 전기통신 부문과 기초과학기술을 주로 연구한다. 지금까지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3만개가 넘는 특허를 갖고 있다.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연구소가 2005년 김종훈을 삼고초려 끝에 사장으로 ‘모셔왔다’. 벨연구소 측이 수장 자리를 3개월이나 비워둔 채 김 사장이 승락하기만을 기다렸으니 삼고초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김종훈은 가난을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가족이 정착한 곳은 메릴랜드의 빈민촌. 언어장벽에 절망한 그는 학교에서는 외톨이였다. 가난은 여전해 밤에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 1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밤새 일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소년 김종훈은 야근이 끝나면 바로 학교에 갔다. 모자란 잠은 수업 후 2시간가량 자는 게 전부였다. 이민은 역경의 나날이었다. 소년은 좌절하지 않고 주경야독하며 불가능과 싸웠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그는 죽기살기로 공부해 수학과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드디어 고교 졸업. 전교 2등을 했다.

몸에 밴 부지런함은 석사와 박사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명문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기술경영학 석사학위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보통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최단기인 2년 에 해치웠다. 이 대학에선 아직도 전설로 통한다. 논문 준비에 파묻혀 새벽 2시를 오후 2시로 착각,점심을 먹으려 했던 일화도 있다. “밝을 줄 알고 나갔는데 깜깜하더라고.” 그는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오전 9시 전에 성취하라.” 결국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32세가 된 1992년 김종훈은 벤처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이름은 유리시스템즈였다.

큰 딸 이름(유리)을 땄다. 그는 대뜸 건물을 통째로 사서 회사를 차렸다. “4분의 1만한 크기로도 충분했지요. 하지만 전 5년 에 10억달러 가치가 있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통째로 샀죠. 꿈 같은 목표였죠. ”그는 거물급 인사를 이사로 영입하기도 했다. 제대로 성장도 안한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거물급 이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 그 사람이 바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었다. 페리 장관은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회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돼 이사를 수락했다”고 말했다. 그가 창업 당시 주목한 분야는 ATM 통신기술 장비였다.

서로 다른 통신 네트워크(무선 구리선 광케이블) 사이에서도 데이터가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신기술이었다. 김 사장은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들이 위성과 같은 다른 네트워크에서 오는 데이터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해 적군의 전투기를 놓친다는 데 착안했다고 한다. 오랜 개발노력 끝에 그는 1998년 드디어 ATM 통신장비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네트워크 간 통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 대당 가격이 10만달러까지 치솟았다.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개발을 완료한 그 해 그는 유리시스템즈를 세계 최고 통신장비 회사인 루슨트테크놀로지(현재의 알카텔-루슨트)에 10억달러(당시 한화 1조3000억원)에 매각, 미국 400대 부자반열에 올랐다. 그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그는 매각 당시 직원들에게 주식의 40%를 나눠주기도 했다. 그는 회사를 매각했지만 루슨트에 다시 스카우트됐다. 광네트워크 부문사장 등을 맡아 글로벌 경영인으로 변신했다. 3년간 경영인으로 있던 그는 2001년부터 4년가량 메릴랜드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벤처신화와 경영인, 교수를 거친 그에게 2005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제의가 들어왔다. 위기에 처한 벨연구소 소장직이었다.

당시 벨연구소는 과거의 영광을 성과로 바꾸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벨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던 루슨트의 헨리 샤키 회장은 불굴의 의지와 혁신, 도전정신의 아이콘인 김종훈 사장을 영입해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김 사장은 몇 차례 고사했다. 벨연구소 역사상 소장 자리 제의를 거절한 사람은 없었다. 샤키 회장은 김 사장 의 거절에도 불구, 3월씩이나 연구소 소장자리를 공석으로 놔뒀다. “당시에는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꼈다”는 게 김 사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벨 소장직을 수락한 그는 사장이 돼 벨연구소를 바꾸기 시작했다.

“벨연구소는 연구소이긴 했지만 개발한 기술로 시장을 바꾸는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는 부임 후 기술을 통합하는 팀과 제품을 빨리 만들어 시장에 투입하는 벤처팀을 만들었다. 기업 임직원들이 노트북을 잃어버렸을 때 그 안에 있는 고급정보를 외부인이 볼 수 없도록 네트워크 카드를 만든 게 대표적인 성과 중 하나였다. 그는 사람들의 능력이 거의 비슷하다고 믿는다. 머리 좋은 것도 종이 한 장 차이고 체력 같은 것도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자기가 열심히 하면 조금 뒤떨어져도 따라갈 수 있으며 인간이 하는 것은 누구든지 마음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늘 가슴에 새기는 말은 그래서 “오늘 내가 열심히 해서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낫게 살자”라는 것이다. “오늘 1달러를 저축하면 내일 1달러 더 부자가 될 것이고 오늘 단어 하나를 더 외우면 내일 가면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알게 될 것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오늘 무언가를 하면 내일은 나아질 것이다. ”그는 “남이 못한다고 하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강합니다. 저의 타고난 성격같다”고 말한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다 해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조한다.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서 해야 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직원들에게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아니라면 과거를 돌아보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들려준다. 성공이든 실패든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새롭게 도전하라는 뜻이다. 그는 갑부이지만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탈 때는 3등석을 타기도 한다. 아이들이 배워야 할 것은 편안함이 아니라 역경이라는 것. 향후 미래모습에 대해 그는 곳곳에 센서가 장착된 센서 네크워크 사회가 출현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체에도 센서가 들어가 건강 등을 모두 감지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의 이공계 위기론과 관련, 그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면서 “앞으로 엔지니어 등 이공계 출신들에게 엄청난 기회가 올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 점을 꼭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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