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부터다.
대혁명을 계기로 시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자연히 민족 개념이 강조되었다.
왕이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국가시대엔 '왕권은 신으로부터 내려온다'는 왕권신수설이 국가의 통치 이념이었다.
그러나 시민이 주인인 시민국가에서는 국민을 구분하는 경계가 필요했고 이에 따라 민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민족의 정의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에 이견이 분분하다.
인종 종교 문화 등을 기준으로 구분해 낼 수 있다는 주장에서 실체가 없는 허구의 개념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대체적으로 "혈연에 의해 연결된 사람들이 동일한 역사 경험을 통해 공동의 역사인식을 갖고 언어를 통해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정의된다.
언어 혈연 문화 등 객관적 사실에 동일 민족이라는 주관적 의식이 더해진 실체라고 신용하 한양대 교수는 정의한다.
⊙ 전체주의로 흐를 때 큰 피해

문제는 민족 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발생한다.
민족 의식이 과도하게 강조되면 다른 민족을 멸시하고 외부에 폐쇄적인 배타적 민족주의를 낳게 된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정치에 이용되어 다른 민족을 학살하는 큰 오점을 남기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를 들 수 있다.
독일 나치는 1929년 대공황 이후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해 모든 혼란과 고통의 원인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독일을 위협하는 투기적 자본과 공산주의 혁명 세력의 배후에 유대인이 있다고 선전하며 2차 대전 중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과도한 민족주의가 초래하는 폐해를 보여 주었다.
이의 여파로 전후 세계는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노사이드(Genoside·집단학살 방지를 위해 설립된 비정부기구)를 탄생시켰다.
민족 간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나 학살은 전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중동 동유럽 아프리카 등에서 일어나는 지역 분쟁의 대부분은 민족 또는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다.
발칸반도 옛 유고연방의 코소보가 수년간의 내전 끝에 최근 독립한 것이나 터키가 투르크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인접 국가인 이라크 국경선을 넘어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는 것도 민족 갈등의 한 단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