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인류의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졌던 시대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은 세계 5000만 명 이상이 희생된 20세기 최악의 재앙이었다. 당시 전쟁을 일으킨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통해 무려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문제
날마다 수많은 유대인이 수용소로 끌려갔고 가스실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학살과 야만적인 폭력에는 일말의 인간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독일로 하여금 사상 최악의 잔학무도한 역사를 쓰게 했을까?
주범은 바로 나치즘이었다. 당시 독일은 나치즘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다. 나치즘은 이탈리아의 파시즘(전체주의)에 인종주의가 결합된 독일의 민족사회주의를 일컫는 말이다. 나치의 총통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적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유대인은 유목민도 아니고 늘 다른 민족의 체내에 사는 기생충일 뿐이다. 더구나 그들이 종종 지금까지 살고 있던 생활권을 버린 것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때에 따라 악용한 숙주 민족에 의해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게르만 민족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고,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합심해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인종적으로 우월한 강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가 그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 세계사적 사명이다.”
이와 같은 나치의 주장은 일반적인 상식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떻게 당시 독일 국민은 자기모순과 궤변으로 가득한 나치즘에 넘어가서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했을까? 독일 국민이 원래 사납고 잔학했기 때문일까?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결합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지옥도는 전체주의의 집단 최면 탓이다. 특히 당시 독일은 나치즘이라는 폐쇄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정상적 사고가 마비돼 있는 상태였다. 독일 게르만족 중심의 배타적 논리에 중독된 독일 국민은 ‘우리 독일’과 ‘우리가 아닌 적’으로 세상을 양분화했다.
독일 국민이 나치의 집단적 광기에 취한 결과는 잔혹했다.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범죄가 가능했던 까닭은 개인이 사라진 집단의 논리 때문이었다. 집단주의에서 개인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집단을 구성하는 부품에 지나지 않으며 무조건적이고 무비판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악의 유대인 학살자로 꼽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무려 수백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음으로 내몬 아이히만은 사실 처음부터 유별난 악인도 기인도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 아이히만이 ‘나치의 학살자’로 변신한 까닭은 다름 아니라 아이히만이 집단주의 논리의 노예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자신의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충직하고 성실하며 정확하고 부지런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는 조국의 일원임을 명예롭게 생각하고 그 조국을 위한 이상적인 노력에 고무된 친위 대원이자 제국 보안본부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는 결코 비겁하거나 배신자가 아니었다. 양심에 따라 스스로 반성해 봐도, 나는 살인자도 대량학살을 자행한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이히만은 처형되는 순간까지 죄의식이나 반성의 기미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내게 부여된 임무를 확고한 의무감에 따라서 수행한다”는 아이히만의 말대로, 그는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자유의 길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