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상상력이 빚어낸 예측불허의 이야기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무한 상상력이 빚어낸 예측불허의 이야기

생글생글2025.04.17읽기 5원문 보기
#출산율 저하#국가 소멸#인구 감소#초단편 소설#온라인 커뮤니티#베스트셀러#출판 산업

2017년 초단편 소설집 <회색 인간>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이걸 소설이라고 해도 되나?’라는 의구심이 떠다녔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인기 얻은 초단편 소설을 한 번쯤 휘잉 돌고 가는 바람일 것으로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8년이 지난 지금 30만 부를 돌파한 <회색 인간>은 100쇄 기념 에디션을 발간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김동식 작가는 주민등록증이 나온 17세에 독립해 바닥타일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따로 문학 공부를 한 일이 없다. 주물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하던 중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소설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1년 후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를 동시에 출간했다. 그동안 <양심고백>, <밸런스 게임> 등 총 10권의 소설집을 펴내면서 ‘초단편’이라는 장르를 확고하게 다졌다.

김동식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초단편을 ‘말로 들려줄 만한 이야기가 담긴 짧은 글’이라고 표현했는데 <회색 인간>에 실린 24편의 초단편은 일반적인 단편소설의 3분의 1 혹은 4분의 1분량이다. 각각의 짧은 이야기 속에 강렬한 스토리를 담았다는 특징이 있다.

재미있으면서 섬뜩

짧은 이야기인 만큼 허를 찌르는 반전이 눈길을 끈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그린다. 서쪽으로 가서 벽 너머 세계에 가면 살 수 있다. 숨지기 전 엄마는 소녀에게 마지막 남은 초코바를 주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파지면, 그때 먹어”라는 말을 남긴다. 몇 명의 사람과 함께 벽 너머 세계로 향하던 소년은 밤에 식량을 훔쳐 무리를 이탈한다.

드디어 벽 앞에 도달한 소녀, 그때 소년도 도착한다. 벽 안으로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둘 중 누구를 받아들일 것인지 회의를 할 때 배가 고픈 소녀가 초코바를 꺼내 소년에게 반을 건넨다. 그 모습을 본 벽 안의 사람들은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대개 소녀일 거라고 예상하지만 소년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이유는 소녀가 ‘초코바 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버렸기 때문’이다.

독특한 상황과 예기치 못한 반전이 이어지는 소설집 <회색 인간>은 재미있으면서 섬뜩하고, 상상을 초월하면서도 인간 냄새를 풍기는 이야기들을 줄줄이 선보인다.

‘회색 인간’에서는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순식간에 땅속 ‘지저 세계’로 떨어진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에게 ‘도시 하나만큼의 땅을 파내면 무사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미션이 떨어진다. 지급받은 것은 곡괭이 하나, 음식이라곤 진흙 맛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이 고작이다. 끝없이 흙을 파내느라 날린 먼지 때문에 회색이 된 인간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요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국가 소멸 얘기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아웃팅’에서는 자꾸만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인류가 인조인간을 창조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사회 속으로 녹아든 인조인간이 너무 감쪽같아 그 누구도 차이점을 알아채지 못한다. 심지어 본인조차 인조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실제 인간과 인조인간이 함께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독자 댓글로 맞춤법 연습

‘운석의 주인’에도 기발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약 1년 뒤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 생명의 90%가 멸종될 것이라는 예견이 나와 지구가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한국의 김남우가 여행을 갈 때마다 운석이 그 나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김남우를 로켓에 태워 우주로 보내기로 한다. 김남우의 가족들은 슬퍼하지만 지구인 전체가 기뻐하는 가운데 로켓이 발사되었고, 그 순간 지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김남우를 따라. <회색 인간>을 쓰기 전까지 김동식 작가는 평생 읽은 책이 열 권도 안 되고, 네이버에서 ‘글 쓰는 법’을 검색해서 기승전결 법칙을 깨달았다고 한다. 초창기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맞춤법 오류가 많았으나, 독자들이 댓글에 남긴 지적을 교과서 삼아 하나하나 고쳐나갔다.

황당한 듯한데 가슴 저미고, 감동적이면서 재미있는 초단편을 읽다가 ‘나도 이런 얘기 많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김동식 작가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짧지만 강렬한 스토리 창작 기술’을 담은 <초단편 소설 쓰기>를 출간했다. 이 책을 보며 글쓰기에 도전해보시라. 그러면 어느 날 <회색 인간>보다 더 기발한 소설집을 출간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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