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농약·원자력·스모그 등
각종 위험에 '동등하게' 둘러싸여 있다
시야가 흐릿해질 만큼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사회를 명확하게 설명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복잡다단한 사회를 이해하고 정의내리려는 욕망 또한 그만큼 크다.
이는 모호하고 불명확한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뚜렷한 척도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어지러운 이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나가기가 힘겹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현대사회를 하나의 공식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즉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
근대화 위험의 확장에 따라,즉 자연 건강 영양 등의 위험의 확장에 따라 사회적 차이와 한계는 상대화된다.
대단히 상이한 결과들이 이로부터 계속해서 도출된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위험은 그 범위 내부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등화 효과를 보여 준다.
위험이 새로운 정치력을 갖게 되는 것은 정확히 그 같은 효과 안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위험사회는 정확히 계급사회가 아니다.
위험사회의 위험지위는 계급지위로 이해될 수 없다.
또는 그 갈등은 계급갈등으로 이해될 수 없다.
우리가 근대화 위험의 특정한 양식,특정한 분배 유형을 검토해 보면 이 점은 훨씬 더 명확해진다.
위험은 지구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산업 생산에는 생산지와는 무관하게 위해의 보편화가 수반된다.
즉 먹이사슬은 실제로 지상의 모든 사람을 다른 모든 사람에게 연결시킨다.
먹이사슬은 국경선 아래로 숨어든다.
대기 중의 산성 성분은 조각물이나 예술 작품만을 조금씩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오래 전에 근대적인 세관의 장벽도 해체했다.
캐나다에서조차 호수들이 산성화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 북부에서조차 삼림이 죽어가고 있다.
▶ 해석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는 공평한 사회라고 말한다.
근대사회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시대였으나,현대는 만인이 저절로 평등한 사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평등이 긍정적 의미의 평등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해와 위험의 만민평등 사회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