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상한제의 역설
정부와 새누리당이 4·1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의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야당과 ‘빅딜’을 추진할 방침이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4·1 대책 후속 법안 처리를 목표로 민주당이 요구하는 전·월세 상한제법 등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 처리가 유력시되고 있다. - 8월2일 연합뉴스
☞경제학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가르친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하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이다. 대가는 눈에 보이는 비용(명시적 비용)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암묵적 비용)도 포함한다. 모든 경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목표한 걸 이루려면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편익과 비용을 비교해서 비용이 들더라도 편익이 가장 많은 정책을 취하는 게 경제정책의 정도(正道)다. 일찍이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셜이 경제학도들에게 소외된 이웃으로 향하는 따뜻한 가슴을 지니되 편익과 비용을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선택을 내릴 줄 아는 차가운 머리를 가지라고 충고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요즘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정치권에서 전·월세 상한선을 규제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전셋값을 법으로 잡아보자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서 나오는 임대료 규제의 효과에서 보듯 전·월세 상한제법은 시장의 기능을 저해하고 서민들을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의의 정책이 당초 의도한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부작용만을 저해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전셋값은 여름철 비수기인데도 요즘 몇 천만원씩 오른 게 기본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한두 달 새 1억원 이상 전셋값이 오른 아파트도 적지 않다. 과거 봄·가을 이사철과 방학 등 특정 시기에만 오르던 것과 사뭇 다르다. 서울 강남, 반포, 잠실, 목동, 분당 등 인기 지역 아파트 전셋값은 ‘억’ 소리가 난다. 서울 강남 도곡렉슬(115㎡) 전셋값은 최근 10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경기, 인천 소재 아파트 전세가격도 상반기에 최고 4000만원 이상 올랐다.
왜 이처럼 전셋값이 뛰는 걸까? 우선 우리나라 주택 시장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경제가 장기 저성장 체제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고 인구의 노령화로 주택 수요 또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주택을 사려는 사람들이 확 줄었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떨어져 주택 수요가 전세로 몰리면서 전셋값 상승을 부추겼다. 예전에는 전세금이 매매가 대비 60%를 넘으면 전세를 드는 것보다 아예 집을 사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젠 이 공식도 통하지 않는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낮아진 상황에서 거래세, 보유세 등 각종 세금과 거래 비용을 들이고 대출까지 받아 집을 사는 것보다 전세보증금만 부담하는 게 더 낫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 공급은 줄었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집을 내놓는 사람들이 급감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전세는 줄고 월세가 늘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이주 수요도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한 요인이다. 서울에선 49곳 3만여가구가 재건축·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각종 주택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것도 한몫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 취득세 감면 등 주택 수요를 일으킬 규제 완화 법안이 국회에 장기간 묶이면서 시장 불신을 초래했다.
민주당이 전·월세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전·월세를 올릴 수 있는 상한선을 정해 서민들을 보호해보자는 뜻이다.
하지만 전·월세 상한제가 시행된다고 전세난이 해결될까? 오히려 수요는 폭증하고 공급은 급감해 전세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전·월세 상한제법에는 집을 빌리는 사람의 계약 갱신 청구권이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2년 동안 전세를 산 사람이 계약 갱신을 요구하면 집주인은 여기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집을 빌리는 사람은 최장 4년 동안 남의 집에서 임대보증금과 월세를 연 5% 선에서만 올려주고 거주하는 것이 보장된다. 이렇게 되면 전세 수요자들은 단기간에 폭증하고 임대인 입장에서는 4년 동안 올려 받지 못하는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려 할 것이다. 전셋집이 부족하면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이면계약 등을 사용하려 들 것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월세 상한제가 실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월세 물량을 급감시켜 오히려 음성적으로 월세를 폭등시키는 등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자 폐지됐다. 임대료를 눌러 전세난을 해결하고 전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시행하려는 전·월세 상한제는 살인적인 전셋값 단기 대폭등을 초래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다. 전세 대책은 가격 억제보다는 공급을 확대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재건축이나 재개발 사업도 전세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시행토록 하는 게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