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사회적 자유주의 창시자 레너드 홉하우스
20세기 전환기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사회는 시민의 복지 향상을 명분으로 정부의 시장개입이 일상화돼 갔다. 자유주의 진영에선 정부의 시장개입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뿐이라고 지적하며 정부는 가격, 임 금, 생산 등을 시장에 맡기라는 불개입 원칙을 주장했다. 자유주의만이 사회와 개인에게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 자유주의가 변화된 경제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부 불개입만을 고수한다면 자유주의 이념은 소멸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 영국의 정치철학자 레너드 홉하우스(Leonard THobhouse)다.
홉하우스는 자유주의를 수정할 목적으로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등 다양한 사상을 동원, 최초로 복지국가의 윤리적 기초를 확립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복지국가는 성장보다 분배와 복지를 중시하는 이념인데 그는 ‘사회적 자유주의’라고 불렀다.
복지국가의 도덕적 토대를 구성하기 위해 홉하우스가 주목한 건 인간, 자유, 평등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그는 인간이 추구할 최고 가치는 자아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이기심을 자제하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삶에 필요한 인격의 형성이다.
자유에 대한 홉하우스의 해석도 흥미롭다. 그는 정부 간섭과 같은 ‘강제’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소극적 자유 대신 자아실현 능력(자원, 기회)을 뜻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이해했다.
홉하우스는 개인 생존에 필요한 재원 이상의 소득 보장, 최소임금제 등을 실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개입은 자유의 증가라고 주장한다. 복지국가야말로 자아실현에 필요한 자원과 기회를 확대하기에 자유의 증진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는 결론이다. 소득이 높을수록 자유가 증대한다는 게 그의 논리이다.
홉하우스가 특히 주목한 것은 평등이다. 신분적 차별이 없다는 의미의 자유주의 평등(형식적 평등)은 기회의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불평등은 한 사람의 자유를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권력으로 변화시키기에 평등 없는 자유는 무의미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는 불평등을 치유할 도덕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분배의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한 입법은 기회의 평등을 위해 정당하다고 홉하우스는 목소리를 높인다. 중소기업과 재래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과 대형 백화점을 규제하는 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얘기다.
관심을 끄는 건 홉하우스의 사회관이다. 그는 사회를 공동체로 이해한다. 공동 목적을 가진 집단이다. 그 목적은 자아실현에 필요한 사회복지의 증진이고 이를 위해 구성원들은 연대감으로 결속해 협력한다. 이런 사회는 공동의 목적 대신 재산 존중, 약속이행 등과 같은 공동의 규칙을 기초로 하는 시장사회와 전적으로 다르다. 자유사회에서 시민은 그런 규칙을 지키면서 시장을 통해 소득을 올린다. 그러나 홉하우스의 공동체에서는 구성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민은 국가를 상대로 경제적 자원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게 사회적 기본권이다. 복지제공이 자선이 아니라는 뜻이다. 시민이라면 그런 권리를 누리는 데 필요한 물적·비물적 부담을 감당할 의무가 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게 자아실현이라고 한다.
홉하우스의 이 같은 논리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다. 먼저 소득 수준과 자유의 정도가 정비례한다는 주장은 부자의 노예가 가난한 농부보다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말의 유희다. 자유는 사람들 간 관계와 관련된 개념이지 경제적 여건과 관련지을 수 없다.
불평등을 없앨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부분도 개인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각 개인의 기회를 결정하는 모든 요인을 고려하는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류가 있다. 그리고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도 아니다. 차별 없는 시장경제에서 야기하는 불평등은 빈곤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홉하우스는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재산상속과 토지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불평등의 사회적 기능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현대 사회를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로 규정한 것은 수천만, 수억명이 함께 사는 오늘날의 거대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인간 이성의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복잡다기한 복지수요와 공급을 완벽하게 계획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그런 문제를 탁월하게 해결하는 시스템이 시장경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