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이나 퇴사 통보도 '비대면'으로 하는 세상…기술로 대체 안 되는 인간 감성의 영역은 있을까
경제

작별이나 퇴사 통보도 '비대면'으로 하는 세상…기술로 대체 안 되는 인간 감성의 영역은 있을까

송영찬 기자2021.03.18읽기 6원문 보기
#해고대행업#마일리지 프로그램#희소성의 원리#비대면 거래#포인트 제도#멤버십 프로그램#출장비 절감#인간 감성

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41) 인 디 에어(下)

“1000만 마일은 지금껏 여섯 명만 달성했어. 달에 간 사람도 그보단 많다고.”1년 중 322일을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분)은 ‘1000만 마일’을 달성하는 게 유일한 목표다. 영화 ‘인 디 에어’ 속 라이언의 직업은 ‘해고 통보 대행 전문가’. 그의 직장은 고객(기업)의 요청을 받으면 직원을 각지로 보내 고용주 대신 해고 통보를 해주는 해고대행업체다. 집이나 가정을 꾸리는 것을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라이언은 비행기와 낯선 호텔에 머무는 생활을 즐긴다. 어느 날 공항 바에서 늘 출장 다니는, 자기와 비슷한 삶을 사는 알렉스 고란(베라 파미가 분)을 만난 라이언은 타지에서 서로 외로울 때 전화와 문자를 할 수 있는 쿨한 관계를 이어간다.마일리지는 거리 단위인 ‘마일’의 수를 뜻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항공사인 미국 아메리칸항공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이 ‘대단한 일’이던 시절, 자사 항공편을 계속해서 탑승해달라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이제는 항공사는 물론 동네 PC방에서도 자사의 포인트 제도를 ‘마일리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적립금, 포인트와 동의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라이언은 남들이 체크인 카운터 앞에 긴 줄을 설 때 사람 한 명 없는 우수회원 전용 카운터로 직행한다. 항공사의 멤버십 포인트일 뿐인 마일리지 제도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희소성’에 있다.‘희소성의 원리’는 어떤 재화의 공급량이 한정돼 있을 때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격이 더 높은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우수회원이 되면 우선 체크인, 항공기 우선 탑승, 수하물 우선 처리 등 ‘우선’의 자격이 주어진다. 라이언은 모든 걸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신용카드로만 결제한다. 결제 시 1000원당 1마일리지를 주는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며 국내에서도 비행기 한 번 안 타고 마일리지를 쌓는 일이 흔해졌다. 자연스레 항공 마일리지의 희소성도 크게 떨어졌다.

항공 마일리지가 흔해지다 보니 마일리지를 카드사 등에 판매해 항공사들이 벌어들이는 수익도 막대해졌다. <그래프>는 세계 주요 항공사의 마일리지 프로그램 수익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이 마일리지를 쓰는 빈도가 높아지자 항공사들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도록 마일리지 사용 제도를 ‘개악’하기도 한다. 최근 대한항공은 장거리 국제선 항공권의 마일리지 구매 가격을 최대 60%까지 올리는 개편안을 발표했다.여느 때처럼 라이언이 비행기에서 상공을 날고 있을 때 기내 안내방송이 나온다. “특별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더뷰크 상공을 지나는 이 순간 여러분 중 한 분이 1000만 마일을 달성했습니다.” 하필이면 난생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 알렉스가 유부녀인 것을 알게 돼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라이언은 그동안 꿈꾸던 세계에서 일곱 번째 ‘1000만 마일러’라는 희소성 높은 자격을 이날 얻었지만 우울했다. 정작 많은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리는 사랑을 갖지 못해서다. 효율성 높이는 ‘얼굴 볼 일 없는 세상’‘스펙’ 좋은 신입사원 나탈리 키너 (애나 켄드릭 분)는 비행기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해고하는 걸 모두 영상통화로 대체하면 출장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나탈리는 모든 ‘해고 전문가’가 보는 앞에서 동료 직원을 영상통화로 해고하는 시범까지 선보이며 비대면 전환으로 회사 출장비를 85%까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라이언은 나탈리의 제안을 말도 안 되는 일로 치부한다. “자네 열정은 이해하는데 현실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는 걸 고려해야지.” 보험료와 항공료를 얘기하며 나탈리의 제안을 밀어붙일 것이라는 회사 대표 크레이그 그레고리(제이슨 베이트먼 분)의 말에 라이언은 소리친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하면 우리 모두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걸 모르세요?” 크레이그는 답한다. “쓸모없게 되는 건 자네지.” ‘비대면 이별’과 ‘비대면 해고’크레이그는 라이언에게 출장에 나탈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면 해고’의 중요성을 설득해보라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공항을 들락날락하는 라이언에게 자신의 베개까지 커다란 가방에 넣고 공항에 나타나는 나탈리는 이해 안 되는 짐일 뿐이다. 나탈리도 라이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상형이 확고하고 결혼과 출산의 구체적인 시점까지 계획하는 나탈리에게 사랑을 믿지 않는 라이언은 이해되지 않는 존재다.‘비대면 해고’를 제안한 나탈리였지만, 자신을 따라 낯선 타지로 오게 한 남자친구에게 받은 것은 헤어지자는 ‘비대면 이별’ 통보. 설상가상으로 라이언을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해고한 사람은 얼마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결국 나탈리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퇴사한다. 나탈리가 선택한 퇴사 통보 역시 문자. ‘비대면 해고’ 방안을 극찬한 크레이그도 ‘비대면 사표’에는 “예의가 없다”며 화낸다.결국 회사는 원래 방식대로 돌아간다. 비대면 해고 방안을 중지시키겠다는 크레이그의 말에 라이언이 묻는다. “이번 출장은 얼마나 걸리죠?” “기약 없어.” 가장 비인간적인 일인 ‘해고’마저도 비대면이 대면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해서일까. 세상에는 기술만으론 대체가 안 되는, 인간의 감성이 필요한 영역이 여전히 남아 있다.

송영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0full@hankyung.com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조직 형태는 기술의 발전으로 갈수록 유연해지죠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조직 형태는 기술의 발전으로 갈수록 유연해지죠

조직은 사회경제적·기술적 환경 변화에 따라 진화해왔으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거래비용이 감소하면서 수직적 위계가 약화되고 외부와의 협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속한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직 경계를 유연화하고 개방성을 높여 '액체에 가까운' 조직 구조를 만드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2020.05.28

'스마트'는 IT 지식이 바탕이 된 관찰·분석에서 나와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스마트'는 IT 지식이 바탕이 된 관찰·분석에서 나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스마트'는 IT 지식을 바탕으로 한 관찰·분석·개선의 과정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기존 도메인 지식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다. 기업의 성패는 규모보다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에 달려 있으며, 디지털 전환의 성공을 위해서는 IT 지식과 도메인 지식의 결합에 집중하고 구체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한 영역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2019.11.14

데이터가 쌓이면 제품 대신 서비스를 팔아요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데이터가 쌓이면 제품 대신 서비스를 팔아요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수집한 고객 사용 데이터를 분석하면 제품 자체가 아닌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으며, 이를 '서비타이제이션'이라 한다. 빈터할터의 식기세척기나 존디어의 농기계 사례처럼 기업은 제품 판매 후에도 데이터 기반 서비스로 고객과 지속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대에는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이 핵심이다.

2020.04.09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앞당겨진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앞당겨진 디지털 전환

코로나19 대감염으로 인해 온라인 업무, 화상 회의, 인터넷 강의 등 디지털 전환이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화되었다. 인공지능은 신체 영역(로봇 배송, 자동화 제조)뿐 아니라 인지 영역(법률 검토, 의료 진단)과 감정 영역(소셜 로봇)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코로나19는 국가 간 기술 도입 격차를 줄이고 비대면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를 크게 높였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는 가속화된 미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야 한다.

2020.05.07

데이터 경제시대에 측정되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데이터 경제시대에 측정되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

데이터 경제시대에 측정 가능한 수치에만 집중하면 장기적 목표를 놓칠 수 있다는 점을 인도 소액금융의 사례로 보여준다. 높은 부채상환율이라는 측정된 데이터에만 의존한 결과 소액금융산업이 거품을 형성했고 결국 붕괴되었는데, 이는 단기 현상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산업의 건전성이나 장기 전망을 반영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데이터는 근본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하고 데이터를 활용해야 한다.

2020.06.11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