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과 규범을 넘어서는 사랑
⊙ 1960년,자유의 분위기 1960년은 4 · 19가 있었던 해이다.
그만큼 자유에 대한 갈망과 지향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0년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문학적으로도 더없는 성과를 가져왔다.
남북 이데올로기를 함께 비판한 최인훈의 「광장」을 가능하게 했고,시인 김수영의 「육법전서와 혁명」 같은 자유를 향한 시편들이 창작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젊음의 에너지는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할 것 같았고 그런 까닭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독재정권을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렸다는 자신감 앞에서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들이 견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60년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개인의 욕망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작용한 듯하다.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을 우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것이다.
1960년 「사상계」에 발표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젊은 느티나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그 하나는 가족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며,또 다른 하나는 관습보다도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보편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강력한 혈연관계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부모 자식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고,부부관계 역시 혈연의 개념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결혼은 혈연관계가 절대 성립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배타적 혈연관계가 부부를 성립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면 혈연의 개념은 또 다른 방식으로 부부관계의 형성에 영향을 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결국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혈연에 의해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
이제 막 근대화가 시작된 시점이고 또 전통적인 가치가 여전히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이 시기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에는 당대에는 낯설 수밖에 없는 가족이 등장한다.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숙희에게 새아버지와 이복오빠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이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아니 그 시절에도 이와 같은 경우는 아주 드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이나 그때나 새로운 가족구성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가 않다.
오히려 반감을 갖거나 지나칠 경우 혐오하는 것이 더 보편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