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은 현대인
⊙ 눈먼 자들의 도시 - 타인과 소통을 단절하다
얼마 전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영화가 상영됐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어서 영화적 해석에 부담이 따랐는지 그다지 훌륭한 평가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고 본다.
원작이나 영화 모두 그 주제가 인간의 존엄성이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어서 갈등과 경쟁이 극심하고 소통이 부재한 요즘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날 갑자기 도시인들에게 눈이 머는 현상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일부 시민들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인 줄 알았지만 이내 도시 전역으로 마치 전염병처럼 확산되자 정부는 이를 억제하기 위해 눈먼 자들을 격리 수용하게 된다.
격리된 그들은 이후로 생존과 인간적 가치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하게 된다.
잠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것부터 시작해서,음식물을 두고 서로 다투는가 하면,종국에는 폭력적인 세력이 나타나 모든 것을 독점하고,이를 통해 자신들의 재물욕과 성욕을 충족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작품 속에 나타난 현상은 물론 현실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배려와 관용은 실종된 채 개인의 욕망만 들끓는 현실사회에 대한 극단적 상징인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경쟁적 사회환경은 현대인에게 타인을 돌아보게 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있다.
또한 근대 이후 타인의 존재보다는 주체의 인식이나 판단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흐름 역시 타자에 의한 시선 자체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그 결과 현대인의 자기 중심성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실정이다.
아마도 과단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될 여지가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처럼 타인을 바라보지 않고,타인의 시선을 무시하는 현대인에 대한 탁월한 은유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우리 소설에서 현대인의 자기중심성과 타인에 대한 몰이해를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김승옥의 '서울,1964년 겨울'을 들 수가 있다.
1964년.
그 해는 4 · 19혁명으로 세워진 민주정부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된 지 3년이 흐른 해였고,베트남 파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였으며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이 이제 막 실행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이 시절 젊은이들은 허탈과 허무에 휩싸인 채 삶의 방향성을 상실해 버린 경우가 많았다.
삶의 현실에서 좌절을 맛본 젊음들은 선술집에서 서성거리며 세월을 보내는 일이 허다했던 것이다.
정치사회적 불안과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도시화 속에서 연대는 끊어졌으며 개인은 극도로 파편화된 채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