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절 경험이 창의성 토대…패션의 전설이 되다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소녀시절 경험이 창의성 토대…패션의 전설이 되다

생글생글2022.04.21읽기 5원문 보기
#럭셔리 브랜드#샤테크#리셀족#명품 시장#패션 혁신#소비자 행동#브랜드 가치#여성 경제활동

명품 하면 샤넬을 떠올리게 된다. 샤넬백을 사놓으면 가격이 오른다고 ‘샤테크’, 샤테크를 위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 오픈런으로 산 가방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족’까지 샤넬과 관련된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다.

‘명품의 대명사’에 등극한 지금과 달리 20세기 초 샤넬은 귀부인들에게 편안한 옷을 제공하는 대중적인 브랜드였다. 에드몽드 샤를 루가 쓴 《코코 샤넬》은 꽤 두껍지만 샤넬의 생애 이야기와 1900년대 초중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 패션에 관한 디테일한 분석이 담겨 있다. 전기는 실재한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교훈과 함께 한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971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코코 샤넬은 여성들을 옷에서 해방시킨 인물이다. 샤넬의 전기를 읽으며 여성의 옷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천재적인 창의성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영감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했는지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샤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지만 코코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져 있다. 샤넬이 22세 때 카페에서 ‘코코리코’와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누구를 만났기에’를 자주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팬들이 “코코! 코코!”라고 외치며 앙코르를 요청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샤넬은 살아생전에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집안 배경과 성장 과정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열두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샤넬은 언니와 함께 오바진수녀원 내 고아원에 맡겨졌다. 샤넬이 평생 좋아했던 ‘엄격함 깨끗함 깔끔함 단순함’은 바로 오바진수녀원의 특징이었다.

소녀 시절 경험이 창의성의 발판

열일곱 살 때 들어간 노트르담기숙학교는 예배 시간이 되면 학비를 내는 부르주아 가정의 딸들만 중앙 걸상에 앉게 했다. 무상학급의 고아나 가난한 학생들은 비좁은 복도 쪽에 부대끼며 서 있어야 했다. 샤넬은 기숙학교 건너편 고등학교의 어린 신사들을 지켜보는 일로 차별의 아픔을 달랬고, 그때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깃과 넥타이로 장식한 검정블라우스’는 반세기 동안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휩쓴 샤넬 스타일로 구현됐다. 어릴 적 동네 사람들이 까만 옷을 입고 장례 치르는 걸 자주 본 샤넬이 가장 좋아한 색은 검정이었으며 그는 유독 블랙 계통의 의상을 많이 만들었다.

1913년 샤넬은 고급 상가가 밀집한 공토비롱 거리에 정식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 여성들은 모슬린 장미를 잔뜩 단 거대한 모자에 긴 치마를 입고, 세 줄짜리 진주 목걸이 등의 화려한 장식을 두르고 다녔다. 코르셋으로 온몸을 조인 귀부인들은 옷을 입고 벗을 때 하인들의 조력을 받아야 했다. 여성들은 끈을 버튼 훅으로 고정한 신을 주로 신고 다녔는데 끝이 뾰족한 구두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볼이 좁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고, 남편들은 이것을 복종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코르셋을 착용한 적이 없는 샤넬은 여자들에게 가볍고 느슨한 옷을 입히겠다는 계획 아래 기수들의 옷을 변형한 스웨터와 세일러복을 만들었다. ‘발끝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바닥까지 일자로 내려오는 원피스, 세일러복, 장화 모양의 뒷굽이 있는 구두, 장식이 없는 모자’로 대변되는 샤넬 스타일은 갑갑하고 무거운 의상 속에 갇혀 지내던 귀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코르셋이 필요없는 옷을 만들다

옷감에서도 혁신적인 선택을 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인 샤넬은 화려한 옷감보다 값이 싸고 대중적인 편물 종류의 옷감에 마음이 끌렸다. 곧바로 남자 옷에 쓰기에도 거친 직물인 저지로 허리를 조이지 않는 반코트를 비롯해 수도복처럼 단순한 디자인의 앙상블을 만들었다.

샤넬은 심플하면서도 편리한 디자인으로 입기도 벗기도 움직이기도 힘든 옷과 씨름하던 여성을 속시원히 해방시켰다. 남성의 조력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던 여성들이 옷이라는 속박을 벗어던지면서 시간과 역량을 발전적인 곳에 쏟게 됐다. 샤넬의 등장은 뒤뚱뒤뚱 조심하며 장식품 역할을 했던 여성들이 보폭을 넓히며 자신의 삶 속으로 힘차게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으나 노래 솜씨가 신통찮았던 샤넬은 자신이 잘하는 패션 디자인에 모든 걸 쏟아 레전드가 됐다. 감추기 급급했던 소녀 시절에 보고 느낀 점이 창의성의 발판이 된 사실에 주목하라. 어제의 결핍이 영감의 화수분이 돼 멋진 미래를 선물하는 게 인생이다.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명품 열기… 긍정적인 면도 있다
커버스토리

명품 열기… 긍정적인 면도 있다

명품 소비를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산업 발전의 기회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가 정부 지원과 경영 현대화를 통해 세계 명품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사례처럼, 한국도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산 명품을 성공적으로 판매하고 있으므로, 의료·법률·외식·교육 등 서비스 분야에서도 이러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6.08.15

허영의 전시장 … 명품 열기
커버스토리

허영의 전시장 … 명품 열기

가짜 명품 사건이 잇따르면서 국내 명품 시장의 거래 질서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며, 경찰청이 전면 수사에 나섰다. 명품에 대한 높은 선호도가 가짜 명품 시장을 키우고 있는 만큼, 전문가들은 프랑스처럼 한국 명품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 계획 수립과 서비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006.08.15

아시아 넘어 세계로…한국 대중문화 '눈부신 성장'
커버스토리

아시아 넘어 세계로…한국 대중문화 '눈부신 성장'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대중문화 수입초과국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드라마와 음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수출되면서 'K팝'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유럽 등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중문화 수출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국가 이미지 제고, 관광객 증가, 한국어 학습 확대 등 경제적·문화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2011.05.11

드라마·K팝을 넘어…이젠 '교육韓流'다!
커버스토리

드라마·K팝을 넘어…이젠 '교육韓流'다!

한국의 교육이 드라마, K팝에 이어 새로운 한류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으며, 외국인 유학생 수가 2001년 1만 명대에서 2011년 8만 명대로 급증했다. 한국이 반세기 만에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원동력이 교육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개발도상국들도 한국의 교육 모델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2012.09.13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전략은 유용하죠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전략은 유용하죠

디지털 시대에도 기술만으로는 경쟁우위를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애플, 아마존,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오프라인 매장, 물류 인프라, 서버 규모 확충 등 전통적인 아날로그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전략들이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라는 변하지 않는 본능에 호소하기 때문이며, 기술 발전만큼이나 인간의 심리와 경험을 고려한 전략이 중요하다.

2018.05.24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