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컴퓨터 백신 개발자 ··· CEO ··· 교수 ··· 그 다음은?
"나는 비효율적인 인생을 살았다. "
자신의 말처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은 현실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온 사람이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최연소 의과대학 학과장이 됐지만 전도유망한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연구에 뛰어들었다.
한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 'V3'가 그가 개발한 대표 브랜드다.
안 원장은 이를 무료로 배포해 PC의 대대적 확산은 물론 한국이 'IT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
안 원장은 1990년대 말 '벤처 신화'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1995년 백신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벤처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10여년간 경영했다.
벤처 열풍이 꺼진 상황에서도 내실있는 경영을 이끌었던 그는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자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고 경영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의 빌게이츠'로 불리며 젊은층이 가장 벤치마킹하고 싶은 인물로 꼽혀왔다.
안 원장은 귀국 후 KAIST 교수로 강단에 올라 공대 학생들에게 경영을 가르쳤다.
하지만 다시 정년을 보장받은 카이스트를 떠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안 원장은 최근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 원장과 함께 '청춘콘서트'라는 대담 형식의 강연을 열어 청년들을 위한 '백신'을 주입하고 있다.
초고속화 · 탈권위주의 · 융합 · 세계화를 화두로 꼽는 그는 "급변하는 사회변화 속에서 안정을 추구하기보다 변화를 주도하라"고 강조했다.
강연을 통해 안 원장은 '국민 멘토'로 불릴 만큼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1년에 들어오는 강연 요청만 3000여건에 이르지만 일정 문제로 1년에 80여건밖에 하지 못한다.
과감한 변신을 해온 안 원장이 이번에는 정치권에 도전장을 냈다.
"정치는 잘 모르고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며 강하게 선을 그어왔던 그는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하자마자 단숨에 지지율 1위에 올랐지만 지난 6일 보궐선거 후보 자리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양보했다.
그는 한 언론이 조사한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43.2%의 지지율을 기록해 40.6%를 얻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제쳤다.
2007년 대선 이후 박 전 대표가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놓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안풍(安風)'의 위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가,일시적인 지지율일 뿐 가당치도 않다"며 대권도전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