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투병 중이던 수필가이자 영문학자 장영희 서강대 교수(57)가 지난 9일 낮 12시50분 별세했다.
태어나자마자 1년 만에 찾아온 소아마비,그로 인해 두 다리를 못 쓰면서 살아가며 겪은 세 차례의 암 선고.
그래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오히려 사지 멀쩡한 사람들에게 밝은 내일의 메시지를 전했다.
장영희 교수가 세상과 작별한 다음날 신문들은 일제히 그가 '별세'했음을 알리는 부고 소식을 실었다.
# 얼마 전 '영원한 문학소녀'이자 명수필가였던 장영희 서강대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때론 아프게,때론 불꽃같이.' 그의 삶 자체가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 그대로였다.
이튿날부터 이어진 그의 추모 글에서 언론들은 그의 죽음을 '세상을 떠났다'고 표현했다.
우리말에서 '죽음(死)'을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인 단어는 '죽다'이다.
'죽음'의 당사자는 대개 윗사람일 터이기에 일상적인 구어에서는 이를 높인 말 '돌아가시다'를 많이 쓴다.
삶과 죽음은 인간사에서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듯이 우리말에는 이 '죽음'을 가리키는 말들이 꽤 많다.
고유어에서 부터 한자어까지,직접적으로 죽음을 나타내는 말에서부터 다른 말을 빌려 완곡하게 드러내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죽다'를 한자어로 하면 '사망하다'이다.
한자어가 지배한 우리 옛말에서는 특히 '별세(別世)/운명(殞命)/영면(永眠)/작고(作故)/타계(他界)/서거(逝去)/붕어(崩御)/승하(昇遐)' 등 여러 한자어들이 있어 경우에 따라 각기 달리 '죽음'을 표현해 왔다.
유교 문화의 반영인지는 몰라도 이 말들은 대부분 아무에게나 붙이지 않고 사람에 따라 쓰는 말을 구별했는데,그런 점에서 이것들은 일종의 계급어이다.
'별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뜻으로 쓰는 가장 일반적인 높임말이다.
'운명' 역시 '죽을 운,목숨 명'자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을 나타내며 '별세'와 함께 쓰인다.
'영면'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죽음'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작고'도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모두 윗사람의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높임말이지만 '타계'에 이르면 쓰임새가 좀 달라진다.
'타계'는 글자 그대로 '다른 세계'를 말하는데,인간계를 떠나 다른 계로 간다는 뜻으로 특히 귀인(貴人)의 죽음을 가리킨다.
1960년대에 지식 사회의 도래를 앞서 예견한 미국의 경영학 대가 피터 드러커가 2005년 11월 사망했을 때 언론은 주로 '피터 드러커 타계'란 말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물론 이런 구별은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가령 장영희 교수의 경우도 '타계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서거'는 '사거(死去 · 죽어서 세상을 떠남)'의 높임말로 주로 왕이나 대통령 등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