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중략)
내 홀로 밤깊어 뜰에 나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
(김광균의 시 '설야' 중에서) 글쓰기의 요체 중 하나는 '내가 쓰는 글이 어떤 성격의 글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과학의 언어로 글을 쓸 것인지,시적 언어가 어느 정도 허용될 것인지가 결정된다.
가령 '눈(雪)'을 과학의 언어로 말하면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이다.
하지만 '눈'을 시의 언어로 풀면 김광균 시인에게서처럼 서글픈 옛 자취이기도 하고 추억이면서 슬픔이기도 하며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이기도 하다.
시의 언어는 그만큼 수사적 표현이 풍부하고 개인적,주관적인 글쓰기가 가능하지만 과학의 언어는 엄격하고 정교하며 객관적인 쓰임새를 요구한다.
과학의 언어와 시의 언어는 언어 사용의 측면에서 양 극단에 놓여 있긴 하지만 그 사이에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조건은 어휘력이다.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풍부한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눈은 예부터 농사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 한겨울 때맞춰 적당히 오면 이듬해에 풍년이 든다는 게 우리네 선조들의 경험칙이다.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보니 눈 이름도 풍성하다.
남쪽 지방엔 새해 벽두부터 폭설이 내려 많은 피해를 냈다고 한다.
폭설(暴雪)은 갑자기 많이 내리는 눈을 말한다.
순우리말로 하면 소나기눈이고 줄여서 소낙눈이라고도 한다.
소나기가 쏟아지듯 별안간 퍼붓는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에 비해 연말 연초에 포근히 적당한 양으로 내리는 눈은 풍년을 기약하는 눈이라 하여 '서설'이라고 했다.
'서설(瑞雪)'은 말 그대로 상서로운 눈이다.
이런 눈이 오는 날이면 날씨도 포근해 속담에서도 '눈 온 뒤에는 거지가 빨래를 한다'고 했다.
'눈이 온 다음 날은 거지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빨아 입을 만큼 따스하다'는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