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향, 넌 어디서 왔니?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중국향, 넌 어디서 왔니?

홍성호 기자2022.10.13읽기 5원문 보기
#반도체 사이클#서버향 수요#일본어투 표현#공공언어#문해력#외환보유액#커뮤니케이션 효율성#우리말 순화

'PC향 칩' '중국향 제품'…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Getty Images Bank“반도체 사이클 하향에도 서버향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게 무너지는 것 같다. ” “제74회 에미상 드라마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정재가 … 트로피를 들고 활짝 미소 짓고 있다. ” 반도체산업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한창 시장에 나돌던 5월. 언론 보도에 ‘서버향’이란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지난 9월에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소식이 국내에 전해졌다. 이때 쓰인 ‘미소’는 아주 익숙한 말이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우리말 체계에 없는 표현…의미 전달 어려워낯선 말은 당연히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쉬운 공공언어 쓰기’에 반하는, 공급자 위주의 기사 작성에서 오는 오류다. 반면 누구나 아는 말이라고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익숙한 말이지만 정확히 모르면 잘못 사용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말이 어색해지고,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반감시킨다. ‘미소’ 용법 같은 게 그런 사례다. 물론 전부 공급자의 메시지 작성 오류에서 비롯된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문해력 논란도 대부분 읽는 이의 어휘력에 집중돼 있지만, 실은 글쓰기 과정에서의 잘못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PC향 칩’ 또는 ‘서버향 반도체’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중국향 제품’이니 ‘자동차향 부품’이니 하는 말도 쓴다.

10여 년 전부터 언론에서 업계 소식을 전할 때 쓰던 표현인데, 점차 대상을 확대하더니 근래에는 여기저기 가져다 쓴다. ‘향’은 어감상 ‘向’을 쓴 것 같은데, 우리말 ‘향’에는 남향이나 북향 같은 말은 있어도 PC향 같은 용법은 없다. 뜻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을 방해하는 ‘잡음’으로 작용한다. 일본어에 ‘~向(む)き(무키)’라는 표현이 있다. ‘방향’을 뜻하는 말인데, 접미사처럼 써서 ‘적합, 적격’이란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일본 사전에는 ‘万人向きの品(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물품)’ 같은 용례를 올려놨다. 여기서 한자 부분만 따다 쓴 게 ‘서버향’이니 ‘자동차향’ 같은 표현이다.

‘중국향 제품’이라고 하면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 중국 실정에 맞는 제품’인 셈이다. ‘서버향 반도체’는 ‘서버에 적합한 반도체’쯤 된다. 우리말 접미사 ‘-용(用)’을 쓰면 훨씬 쉽다. ‘중국용 제품, 서버용 반도체’라고 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충분하다. 외래어든 순화어든 ‘소통 효율성’이 기준일본어투라고 해도 우리말에 없는 표현이면 얼마든지 들여다 쓸 수 있다. ‘우리말 저수지’를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 체계에 이미 있는 말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더구나 외래말이 의미 전달마저 잘 안 된다면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해오던 일본어 잔재 청산과도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다. 무엇보다 말을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게 써야 한다. ‘중국향’에는 그런 조건들이 다 결여돼 있다. 가령 예금고니 외환보유고니 할 때의 ‘고(高)’가 그렇다. 우리말에선 ‘높을 고(高)’에 이런 용법이 없고, ‘액(額)’을 써서 잔액, 외환보유액이라고 한다. ‘수입선/수출선’도 마찬가지다. 선(線)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앞 선(先)’ 자다. 일본에서는 이 말을 ‘곳’ 개념으로 쓴다. 우리말 ‘처(處)’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니 수입국 또는 수입처라고 해야 쉽다. 단순히 일본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없어야 한다.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낯선 말과는 반대로 너무도 일상적인 말이라 종종 그 용법을 벗어나는 경우도 있다. ‘활짝(또는 크게) 미소 짓고 있다’는 무심코 넘길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어색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미소(微笑)’는 누구나 알다시피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웃음이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이정재 씨는 마음껏 활짝 웃고 있다. 단어 의미에 맞지 않는, ‘용법의 이탈’인 셈이다. 크고 환하게 웃는 웃음은 미소라고 하지 않고 ‘함박웃음’이라고 한다.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으니 한자어 ‘파안대소(破顔大笑)’를 써도 좋다. 늘 사용하는 말이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지 않으면 잘못 쓰기 십상이다. 단어를 함부로 쓰는 것은 우리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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