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령 사회'는 왜 '고령 사회'에 밀렸나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노령 사회'는 왜 '고령 사회'에 밀렸나

홍성호 기자2022.06.02읽기 5원문 보기
#고령 사회#노령 사회#평균 수명#사회적 인식 변화#언어 정책#성소수자 차별#국립국어원#용어 개선

사회적 인식 변화는 주력으로 쓰는 단어 자체를 바꾸게 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노인'이 종종 '어르신'으로 대체되는 것은 그런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노령 사회'보다 '고령 사회'란 표현이 선호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뱅크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익숙하면서도 난해한 게 또 있을까? 어렸을 때는 남녀 간의 사랑이나 부모님의 사랑이 다인 줄 안다. 조금 넓혀 봐야 나라 사랑이니 우리말 사랑이니 하는 정도다. 요즘은 남자끼리 또는 여자끼리도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말도 바뀌는 것은 당연지사다. 사전에 반영된 ‘사랑’ 풀이가 달라지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말도 달라져‘애인’과 ‘연인’은 같은 말이다. ‘연애의 상대자’를 가리킨다. 1957년 한글학회가 완간한, 최초의 국어대사전 《조선말 대사전》에서의 풀이다. 그럼 ‘연애’는? 이는 ‘남녀 사이의 애틋한 사랑’을 뜻한다. 여기서 ‘사랑’은 뭘까? ‘이성의 상대에게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다. 물론 좁은 의미에서의 ‘사랑’ 풀이다. 이런 말들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요소는 ‘남녀 간’이다. 《조선말 대사전》 이후 국어사전에서는 모두 그렇게 풀어왔다.그런데 2012년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전 풀이에 있던 ‘남녀 사이’ 또는 ‘이성 간’이란 표현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어떤 상대’ 또는 ‘두 사람’이란 말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웹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에서의 일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 기존 풀이가 ‘성(性)소수자 차별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일자 이를 중립적 표현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보수단체들이 반발했다. 국어원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표현을 썼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일부 종교단체 등을 중심으로 재개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국어원은 2013년 10월 재검토에 들어가 이듬해 1월 ‘남녀’ 표현을 되살린 뜻풀이로 다시 고쳐 웹 사전에 올렸다. 이 사태는 급기야 그해 국정감사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정모 국회의원은 국감 보도자료를 통해 “(국어원이) 외부 압력과 민원에 굴복해 ‘사랑’ 등에 관한 뜻풀이를 이성애 중심으로 재수정했다”며 “우리의 말과 언어는 인류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신장하는 수단이 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회 인식 변화에 따라 기왕에 알던 단어 풀이가 달라지는 사례 중 하나다. ‘노인’이란 말 기피…‘어르신’으로 점차 대체사회적 인식 변화는 주력으로 쓰는 단어 자체를 바꾸게 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경로당’이란 명칭이 ‘시니어센터’나 ‘시니어클럽’으로 변해 가는 게 그런 사례다. 예전에 ‘노인정’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이름을 바꾼 게 ‘경로당’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제 그런 말조차 싫다고 해서 아예 외래어로 이름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외래어 남용으로 보기엔 좀 더 근원적인 까닭이 있을 것 같다. 평균 수명이 80을 넘으면서 ‘노인’이란 말을 잘 쓰지 않으려는 사회심리적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늙을 로(老)’ 자를 피하려는 분위기도 읽힌다. 문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노인’이 종종 ‘어르신’으로 대체되는 것은 그런 연장선상으로 이해된다. ‘노령 사회’보다 ‘고령 사회’란 표현이 선호되는 것도 마찬가지다.예전에 동사무소로 부르던 곳이 2000년대 들어서는 주민센터라고 하더니 요즘은 행정복지센터란 이름을 달고 있다. 장애자라고 부르던 말은 ‘장애인’으로 이미 바뀌었고, 노숙자는 ‘노숙인’으로, 당선자 역시 ‘당선인’으로 바뀌어 가는 추세다. ‘-자(者)’보다 ‘-인(人)’이 더 우아하고 품격 있고 상대를 대접해주는 표현이라는 것은 언어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리 생각한다. 모두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주력으로 쓰이는 말의 형태가 교체된 결과다.

저자·前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이를 단순히 차별어 금지니 외래어 남발이니, 우리말 순화니 하는 시각에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발전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말의 변천은 그 자체로 언어적 실험이고 진화의 한 양태다. 다양한 말의 생성과 소멸, 뒤섞임 속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벌어질 때 우리말도 더 강해진다.

AI 퀴즈

이 기사로 1분 퀴즈 풀기

객관식 3문항 · 즉시 채점

광고Google AdSense — 728×90

🔗 본문 속 개념

📚 함께 읽으면 좋은 기사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헬스케어 취업문 갈수록 넓어져
2020학년도 대입전략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헬스케어 취업문 갈수록 넓어져

고령화와 의료기술 발달로 헬스케어 산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관련 취업 기회가 증가하고 있다. 의료기기 개발자는 하드웨어 공학, 소프트웨어 데이터 분석, 의학 지식, 법적 행정 지식을 모두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의공학과 같은 융합 학과 진학이 유리하다. 현재 전국 43개 대학에서 의공학 관련 학과를 운영 중이며, 기계공학이나 전기전자공학으로 진학 후 석사과정에서 의공학을 배우는 것도 좋은 진로 선택이 될 수 있다.

2019.02.21

Baby Boomers 산업지도 바꾼다

책 활자 커지고 중년의류 히트

미국과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거대한 소비 집단으로 부상하면서 산업 전반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7800만 명의 베이비붐 세대가 책의 활자 크기 확대, 중년 여성 의류 브랜드 출현, 부동산 건설 붐을 일으키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3년간 50조 엔 규모의 퇴직금 시장을 놓고 금융·관광·유통 업계가 맞춤형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05.08.29

커버스토리

국민연금 혜택 왜 줄여야하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주요 내용은 보험료를 현재 9%에서 2009~2017년에 걸쳐 12.9%로 인상하고 지급액을 월평균 소득의 60%에서 50%로 인하하는 것이다. 1988년 제도 도입 당시의 약속이 현실화되지 못한 가운데, 이번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은 연금 재정 고갈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며, 저소득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제도 함께 도입될 예정이다.

2006.12.06

경제를 알아야 진짜 세상이 보인다
커버스토리

경제를 알아야 진짜 세상이 보인다

미국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일반 국민과 정치인들이 복잡한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선진국들이 경제·금융 교육을 강화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가 발전과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선한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며, 냉정한 경제 논리와 현실의 복잡성을 이해한 정책이 필수적이다.

2009.02.18

2007학년도 대입수능

시사관련 문제 많았는데… "생글생글만 잘 읽었어도…"

2007학년도 수능에서 고령화, 연예인 테러 사건, 월드컵 빨간 비옷 품귀 현상, 황우석 파문 등 최근 시사이슈와 실생활 관련 문제들이 다수 출제되었으며, 평소 시사에 관심 있던 학생들이 더 유리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시사성 있는 문제들 중 상당수는 한국경제신문의 고교생 경제교육신문 '생글생글'에서 미리 다룬 내용들이었다.

2006.11.15

광고Google AdSense — 728×90 또는 97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