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연기 보정한 배우, 아카데미 수상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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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연기 보정한 배우, 아카데미 수상 적절한가

송형석 기자2025.03.13읽기 6원문 보기
#인공지능(AI)#아카데미상#딥페이크#컴퓨터그래픽(CG)#할리우드 총파업#일자리 대체#기술 윤리#예술성 평가 기준

네이버영화 제공지난 2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 ‘브루탈리스트’에 출연하면서 인공지능(AI) 기술로 발성을 교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후 미국으로 이주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를 조명했다. AI 음성 기술을 사용해 브로디와 공동 출연자 펠리시티 존스의 헝가리 악센트를 교정했다.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건축 도면 제작에도 AI를 활용했다. AI의 도움을 받은 배우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주는 게 적절한지를 놓고 영화 애호가와 평론가들의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이제 대세가 된 만큼 AI 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예술성을 평가하는 시상 행사에선 AI 영화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 인공지능은 영화 발전시킬 신기술…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 되레 늘어‘브루탈리스트’와 관련한 AI 사용 적절성 논란은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헝가리어 악센트 등 영화의 극히 일부분에만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연기와 영어 대사 등은 온전히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몫이었다. 신기술을 영화에 접목하는 시도가 처음 이뤄진 것도 아니다.

‘배트맨’, ‘스파이더맨’ 시리즈 같은 영웅물, ‘마션’과 ‘인터스텔라’로 대표되는 공상과학물엔 컴퓨터그래픽(CG)이 난무한다. 하지만 CG가 영화제 수상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관객과 평단이 CG를 영화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AI는 영화 제작의 미래를 바꿀 기술이다. 전통적 촬영과 편집 기술로는 만들 수 없거나, 비용 부담 때문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을 스크린으로 옮길 수 있게 해준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도가 늘어나고, 영화 콘텐츠의 품질도 전반적으로 올라간다. ‘브루탈리스트’도 AI 덕을 톡톡히 봤다. 이 영화는 상영 시간이 3시간 30분에 달할 만큼 호흡이 길다.

그런데도 제작비가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저렴한 960만 달러(약 139억원)에 불과하다. AI를 적절히 활용해 제작 기간과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할리우드가 유독 AI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영화 관계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어서다. 2023년 할리우드 작가·배우 조합은 대대적 총파업을 감행했는데, 이들의 주장 중 하나가 AI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AI에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영상과 음향 기술자들이 AI 도입을 반대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폈다. 영화 관계자들의 일자리가 갑자기 줄어드는 것은 해당 업계의 중요 이슈로 경우에 따라선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적절치 못한 접근이다. [반대] 평범한 배우가 AI로 명배우 둔갑할 수도, 가짜 영상 판쳐…수상 기준 명확히 해야문장 몇 개만 입력하면 AI가 척척 영상물을 만들어주는 시대다. 이미 유튜브와 SNS 등에선 ‘진짜’와 비슷한 ‘가짜’가 분 단위, 초 단위로 쏟아지고 있다. 전 세계를 들끓게 만든 딥페이크 논란도 AI 영상에서 비롯했다. 이런 시기에 AI로 연기를 보정한 작품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에 ‘AI 덧칠’을 하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물론 ‘부루탈리스트’의 주연배우인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억울할 수 있다.

헝가리어 대사가 필요한 일부분에만 AI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기준의 문제다. 이미 이번 수상으로 AI를 활용한 악센트 교정은 허용된다는 전례가 만들어졌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다음은 제스처, 그다음은 음색 이런 식으로 기준이 하나씩 무너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배우의 연기력이 의미를 잃게 된다. 아카데미상의 존립 기반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삼류 배우가 AI의 도움으로 명배우로 둔갑할 수 있는 시대에 상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감독이나 작가 등 다른 영화 산업 관계자들의 입지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정 직군의 업무를 AI가 대체할 수 있으니 한 명 한 명 관계자를 줄여나간다면 실력 있는 영화인이 영화판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AI 자동 제작 영화’만 남을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영화 시장에 AI 도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가능한 일도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장이 제작비를 손쉽게 줄일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쓰겠다고 하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아카데미상 같은 영화 시상식은 예외로 둬야 한다. 필요하다면 AI 기술의 도움을 받은 별도의 영화 관련 상을 만들면 될 일이다.

√ 생각하기 - 원칙적으로 허용…공모전에선 적절한 기준 정해야 AI 기술의 허용 범위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는 곳은 영화계만이 아니다. 미술과 음악계는 물론 웹툰·웹소설 시장에도 이 이슈와 관련해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콘텐츠 플랫폼을 운영 중인 네이버와 문피아의 경우 개인 창작자들이 도전하는 웹툰이나 웹소설 공모전에서만 AI를 금지하는 것으로 선을 정했다. 일반적인 연재 때는 AI 활용을 허용하되,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공모전은 예외로 두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른 분야도 비슷한 방식의 해법을 모색 중이다.

AI를 쓰는 것은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어렵지만, 공모전이나 시상식 출품작의 경우 적절한 제한을 두는 것으로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모양새다. 관객이나 사용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추세다. 딥페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AI가 만든 창작물에 워터마크를 붙이는 것처럼, 작품을 발표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AI의 도움을 받았는지를 표기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볼 만하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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