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테러도 이라크人의 민주주의 열망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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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테러도 이라크人의 민주주의 열망 막을 수 없었다”

조귀동 기자2010.03.10읽기 6원문 보기
#이라크 총선#투표율#민주주의#정치적 통합#수니파-시아파 분열#원유 수출#유전개발#미군 철수

총선 투표율 62%로 예상치 크게 웃돌아… 정국 안정 여부 가늠자 지난 7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한 투표소.올해 63세의 움 아우스 할머니는 구부정한 등에 지팡이를 짚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치않은 무릎에 거동이 힘든데다 총선에 반대하는 무장세력이 로켓탄과 박격포탄으로 투표소를 공격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아우스 할머니는 반드시 투표하기로 마음먹었다. "가족들은 나보고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투표소에 가지 말라고 말렸지요. 하지만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미군점령 이후 발생한 분리주의 테러에 목숨을 잃은 내 형제들을 생각하며 투표를 하러 나오게 됐습니다.

"아우스씨는 폭탄공격 위협에도 불구하고 투표소에 나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실시된 이라크 총선은 선거 이상의 의미가 있다. 2003년 미군 주도의 연합군 공격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 7년, 2005년 12월 총선 이후 4년3개월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이라크가 본격적인 민주주의 국가로서 발을 내딛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인들은 2005년 총선을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얼굴마담 역할을 수행할 친미정부 구성을 위한 요식행위쯤으로 받아들였다. 인구의 35~40%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아예 선거에 불참하기도 했다.

미국의 개입 없이, 또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한 가운데 치러지는 선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총선 전날인 6일,이라크 내 정치세력들은 자파 후보를 알리는 사진과 포스터 대신 이라크 국기를 차량에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이라크 선거관리위원회(IHEC)가 집계한 이번 총선 투표율은 62.4%다. 지난해 1월 지방선거 투표율 51%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이며 예상 투표율 55~60%보다도 높다. 특히 쿠르드족 밀집지역인 아르빌(76%)이나 키르쿠크(70%) 등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투표율을 보여서 쿠르드인들이 선거에 기대는 관심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수니파 밀집지역에서도 60% 이상의 높은 투표율을 나타냈다.

325석의 의원을 뽑는데 6200명이 후보로 나선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이라크의 정치적 통합이다. 지난 2005년 선거는 수니파가 불참한 반쪽짜리 선거였다. 이라크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시아파(전체 인구 60%)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1932년 이라크 건국 이후 줄곧 집권세력으로 자리잡아 왔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와 함께 시아파에 정권을 내준 수니파는 시아파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 2005~2006년에는 내전상태와 다름없는 폭력적 대립을 계속해 왔다. 이런 정파 간 분열과 대립이 이번 선거를 통해 봉합되고 정치적 안정을 이룩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정확한 개표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아파인 말리키 현 총리가 이끄는 법치국가연합이 제1당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과반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연립정부 구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시아파 핵심인사인 이야드 알리와 전 총리와 수니파 주요 정당인 국민대화전선이 합세한 민족주의 성향의 '이라키야'는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반미 · 친이란 성향인 '이라크국민연맹'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쿠르드 정파는 차기 총리 선출에 '캐스팅보트'를 쥐는 존재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친미성향인 말리키 현 총리는 이라크 안정화를 치적으로 내세우며 원유 수출 증대를 통한 경제 재건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석유매장량 세계 3위인 이라크는 지난해 국제입찰을 통해 10개의 유전개발업체를 선정했다. 앞으로 7년 내에 원유 생산을 현재보다 5배 가까이 많은 하루 1200만배럴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법치국가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오는 6월 의회에서 말리키 총리가 재선되면 이 같은 재건 계획이 한층 탄력받을 전망이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 여부도 주된 관심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총선에 대해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이라크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하면서 "(예정대로) 내년 말까지 모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9만6000명의 병력을 이라크에 배치 중인 미국은 올 8월까지 전투병을 우선 철수하고,내년 말까지는 전 병력의 철군을 완료할 계획이다. 애드 멜커트 유엔 이라크 특사도 이번 총선을 "폭력에 맞선 이성의 승리"라며 "선거가 잘 조직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총선 후에도 불안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같은 철군 계획이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레이 오디어노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은 지난달 말 "이라크 총선 이후 정치적 혼란 상태가 야기될 경우 미군의 출구전략을 늦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라크가 빠르게 내정불안을 해소하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시하는 회의론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 초기 후세인 정권의 기반이었던 수니파 주축의 바트당 세력을 중하위직까지 모두 내쫓았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이들은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 속에서 무장 투쟁의 주축이 되었다.

또 바트당 세력을 막기 위해 수니파 민명대를 10만명 규모로 육성했는데, 이라크 정규군이나 경찰로 편입한다는 미국과 이라크 정부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서 많은 수가 이탈한 상태다. 이라크의 종교 갈등이 단순한 종파 차이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점도 골치거리다. 알짜배기 자원인 석유는 시아파와 쿠르드족 지역에만 매장돼 있다. 석유자원 분배를 둘러싼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라크가 국가의 틀을 유지하려면 수니파 지역에 석유수익을 적절하게 나눠줘야 하는데 시아파나 쿠르드족은 그럴 의사가 별로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가장 반미적인 이라크급진연맹의 거점이 바그다드 동부 시아파 거주지역인데, 여기에도 석유가 나지 않는다. 강경노선을 완화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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