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선포' 태국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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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사태 선포' 태국에서 무슨 일이?

오광진 기자2008.09.02읽기 6원문 보기
#비상사태 선포#반정부 시위#탁신 친나왓#쿠데타#아시아 금융위기#탁시노믹스#포퓰리즘#환율 급락

"現총리는 탁신의 꼭두각시"…반정부 시위 격화 태국이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3개월째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지난 2일엔 급기야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방콕에 비상사태가 내려지기는 2006년 9월19일 당시 탁신 친나왓 태국 총리가 쿠데타설에 따라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2년 만이다. 또 지난 5월 국민민주주의연대(PAD)가 사막 순다라벳 총리를 탁신 전 총리의 꼭두각시라며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위에 나선 지 101일, 정부 청사를 점거한 지 8일 만에 내려진 것이다. 비상사태는 방콕에만 선포됐지만 시위는 지방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태국 남부에 있는 대표적인 휴양지 푸껫에 있는 국제공항이 시위대 점거로 일시 폐쇄된 데 이어 핫야이 국제공항이 폐쇄된 후 운영이 재개됐다 다시 폐쇄되는 등 사실상 무정부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정국불안으로 주가와 바트화가 급락하고 경제성장률도 둔화되면서 일각에선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태국의 외환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나온다. 시위 격화 배경에는 지난달 11일 영국으로 망명한 탁신 전 태국 총리에 대한 강한 불신이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PAD는 2006년에도 탁신 당시 총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를 이끈 바 있다.

탁신 전 총리는 '성공한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에서 '부패 지도자'로 몰락한 정치인이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기업가로 사업 수완을 현실 정치에 접목시켜 태국 정치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도 있지만, 독선적인 통치스타일로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비난도 동시에 받고 있다. 1949년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비단 판매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찰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대 경찰 인맥을 기반으로 1980년대 '친(Shin) 그룹'을 출범시켰다. 친 그룹은 이동통신 독점사업권을 따낸 뒤 컴퓨터와 케이블TV 시장을 차례로 석권하는 등 급성장했다.

탁신은 1994년 외무장관에 발탁됐고 두 차례 부총리를 지낸 뒤 1998년 타이 락 타이당(TRT·태국은 태국을 사랑한다는 뜻)을 창당했다. TRT는 창당 3년 만인 2001년 태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원 의석 과반수를 장악했고, 총리직에 오른 그는 의료비 감면과 부채 탕감 정책 등으로 농촌지역과 빈민층을 사로잡았다. 그의 집권 후 태국 경제는 1990년대 말 아시아를 강타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고속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CEO식 국정운영과 경제를 우선하는 '탁시노믹스' 정책은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대중과 영합하는 인기 정책으로 '포퓰리스트'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CEO 총리'로 탄탄대로를 걷던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회사였다. 2006년 1월 그의 일가가 회사 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에 19억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의 분노를 샀고,결국 그해 4월 사임을 발표했다. 이후 한달반 만에 슬그머니 총리직에 복귀했으나 2006년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하던 중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축출돼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6개월간 군정을 거친 뒤 치른 총선에서 지난 1월 탁신 전 총리의 최측근인 사막 순다라벳을 중심으로 한 연립 정부가 탄생하게 돼 PAD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한 달 뒤인 지난 2월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한 데 이어 5월 사막 총리가 군부 쿠데타 이후 수립된 과도정부 아래서 제정된 신헙법을 개정해 탁신을 사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반정부 시위가 다시 시작됐다. 태국 의회가 6월27일 사막 총리 및 7명의 각료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부결시키자 시위는 더욱 불이 붙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탁신이 재직 시절 실시한 복권사업과 미얀마에 대한 차관 제공,국유지 불법 매입 등과 관련한 부패혐의로 징역형을 면키 어려운 처지에 빠지자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영국으로 도피해 망명을 신청했다.

이 때문에 시위는 더 격화됐고 특히 현 정부 지지자들까지 거리로 나와 지난 1일 반정부시위대와 충돌, 1명이 총상으로 숨지는 유혈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수도 방콕에 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이다. 태국 정국이 혼돈으로 치닫는 것은 태국 사회가 탁신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찬반 양대 세력으로 극명하게 갈려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탁신의 반대세력은 수도인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산층,친(親) 민주화 세력 및 왕정주의자 등이며 군부 내에서도 다수의 세력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탁신의 지지세력으로는 사막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농민과 도시의 빈민층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 같은 사회의 양극화가 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경제에 타격을 주며 정치 시스템을 마비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문제는 정국불안으로 발목 잡힌 태국 경제다. "태국 경제 최대 위협은 인플레보다 정치불안이다"(태국 중앙은행 아차나 와이쾀디 부총재)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 정국불안으로 당장 태국 국내총생산(GDP)의 6%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타격을 입게 됐다. 한때 일시 폐쇄됐던 국제공항이 있는 푸껫은 지난해 태국을 방문한 관광객 1600만명 가운데 3분의 1이 찾은 대표적 휴양지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5월25일 이후 980억바트(28억달러)어치의 주식을 매각하는 등 외국 자본의 이탈이 본격화하면서 주가와 바트화 가치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태국 증시의 SET지수는 시위가 시작된 이후 25% 하락했고, 같은 기간 바트화 가치는 6% 이상 떨어졌다. 바트화 가치는 작년만 해도 15.6% 상승하며 달러당 29바트대에 진입했지만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달러당 34바트대로 급락했다.

주가는 19개월, 바트화 가치는 1년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투자 증가 등에 힘입어 1998년 말 284억달러에서 올 5월 말 기준 1064억달러로 꾸준히 증가해 온 외환보유액도 지난달 22일 현재 1017억달러로 감소했다. 성장률도 1분기만 해도 전년 동기대비 6%대에 달해 작년 4분기(5.7%)를 웃돌았지만 2분기엔 5.3%로 둔화됐다.

오광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kj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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