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보안국(NSA)이 6월 비밀 개인정보 수집 프로그램 ‘프리즘’으로 곤욕을 치른 뒤 최근 도청으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지난달 26일 NSA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폰을 10년 이상 장기 도청했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베를린을 찾은 올해 6월 직전까지 NSA가 메르켈 총리의 전화를 엿들은 정황도 드러났다.
# 메르켈 총리가 테러리스트?
슈피겔은 메르켈 총리의 휴대폰 번호가 NSA의 도청 표적 명단에 ‘GE 메르켈 총리’로 표시됐다고 에드워드 스노든 전 NSA 요원이 제공한 기밀문서를 토대로 전했다. GE는 독일을 의미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과거 표기 방식이다. 또 메르켈 총리는 야권 정치인 시절인 2002년부터 10년 이상 NSA의 감청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슈피겔은 “NSA가 베를린 주재 미국 대사관에 스파이 지부를 차리고 첨단장비로 독일 정부를 감청했다”며 “파리 마드리드 로마 프라하 등 세계 80여개 지역에서도 비슷한 도청 시설을 무단으로 운영했다”고 보도했다.
독일의 일요판 신문인 빌트 암 존탁은 NSA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이 2010년 메르켈 총리에 대한 도청 내용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도청을 중단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계속하도록 놔뒀다”고 폭로했다. 이 신문의 보도는 NSA 도청에 항의하는 메르켈과의 통화에서 자신은 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 오바마의 말과 반대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 우방국 달래기 나선 오바마
NSA의 도청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감시 대상으로 거론된 우방국들의 반발이 거세다.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오는 18일 의회 임시회의를 소집해 메르켈 총리 도청 의혹을 다루는 한편 정보당국 수장과 총리실 대표 등을 미국에 보내 해명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대표는 미국이 첩보동맹 관계에 있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맺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상호 스파이 행위 방지 협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6000만건에 달하는 전화를 도청당했다는 스페인 정부도 제임스 코스토스 주 스페인 미국대사를 불러 해명을 요구했다. 코스토스 대사를 면담한 이니고 멘데스 데 비고 스페인 유럽부 장관은 “부적절하고 용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엘마르 브록 유럽연합(EU) 의회 외교위원장도 “메르켈 총리를 10년 넘게 도청하는 식의 스파이 활동은 용납할 수 없다”며 미국의 도청 행위가 독일법 위반이라고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통해 NSA의 대규모 정보수집 활동을 보도해온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CNN 방송에서 NSA의 도청을 두고 “테러와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메르켈 총리가 테러리스트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여론이 갈수록 나빠지자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달래기’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안보 활동은 미국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다만 정보당국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문제에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만 최근 수년간 정보당국의 역할이 확대·발전해온 것을 목격했다”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관련 활동을 점검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 정치권은"정당한 활동"목청
NSA의 도청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확산되는 가운데 미 정치권은 “정보 수집은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이며 다른 나라도 첩보활동을 한다”고 주장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공화·미시간주)은 CNN 방송에 출연, “NSA가 메르켈 총리 등 외국 정상과 민간인의 통신 내용을 엿들었다는 폭로는 전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미 정보기관들이 국내외에서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놀라울 것”이라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수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