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3일. 독일은 40년 만에 비로소 통일됐다. 하지만 충분한 사전 경제협력 없이 갑작스레 진행된 동·서독 통일은 상당한 부작용을 낳았다. 경제적 격차로 인한 갈등, 서독 주민들의 동독 지원에 대한 반감, 동독 주민들의 사회주의 향수, 동·서독 간 지역 갈등과 적대감 등은 우리나라 통일 과정에서도 그대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다.
남한과 북한은 한민족이지만 60년 이상 서로 다른 경제체제에서 살아왔다. 그간의 세월과 경제적 차를 뛰어넘어 남북이 하나의 공동체로 재결합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통일에 앞서 경제협력이 중요하다. 남과 북의 유일한 경제협력의 불씨였던 개성공단이 사실상 잠정 폐쇄 단계에 들어갔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정치 논리에 의해 수없이 흔들리더니 결국은 그 불씨가 사그라진 것이다.
#'대화의 물꼬' 희망으로 태동
개성공단 즉 개성공업특구는 2000년 남한의 현대아산㈜과 북한의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업지구 건설에 합의하면서 추진되기 시작했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의 3대 사업 중 하나로 북한이 70년간 토지를 임대해주고, 남한이 여의도의 8배인 2000만평(개성공단 850만평·배후도시 1150만평)을 투자·개발하는 사업이다. 서울 도심과 한두 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편리한 지리적 조건과 낮은 인건비라는 이점으로 공단부지 분양 당시 2.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꽤 높은 인기를 끌었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기술력과 북한의 노동력·토지가 결합된 윈-윈 방식의 성공적인 경제협력 모델로 평가받았다. 이후 남북한 최대 경제협력의 창구이자 대화채널로 자리잡았고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살, 현대아산 근로자 136일간 억류, 키 리졸브(한·미 합동군사훈련), 수차례 핵실험 강행, 장거리 로켓 발사 등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 때마다 개성공단 통행로는 닫혔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할 때마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압박카드로 꺼내들곤 했다.
#상업적 성격보다 상징적 사업
“남한 공격을 위한 주 공격로에 개성공단이 건설된다.” 2004년 12월 폴란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남북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북한이 암암리에 시장경제를 배우는 창이었다. 금강산 관광은 관광객들이 입산료를 내고 북한 주민과 별다른 접촉 없이 경치만 둘러보는 데 반해 개성공단은 북한 주민들이 입주기업의 근로자로서 직접 땀을 흘려 일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았다. 북한 근로자들의 연간 총임금은 9000만달러다. 이 돈을 무역을 통해 벌자면 수십억달러어치를 수출해야 하는데 북한의 무역 규모나 국내총생산에 비춰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큰 이익을 가져다 줬다. 중국에서 현지인 한 명 채용 시 30만원가량 들지만 개성공단은 15만원이니 우리 측 역시 이득이 컸다. 게다가 북한 근로자들은 말이 통하고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아 불량률도 적다는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은 남북의 물적 교류와 투자 이상으로 상호 간 신뢰 구축과 ‘통일준비사업’으로 의미가 있다. 즉 평화만들기(peace making)사업인 셈이다. 남북 경협의 상징적 사업으로 긴장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 개성공단이 활성화될수록 ‘코리아 리스크’가 줄어드는 등 파급효과도 상당했다.
개성공단의 상징성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막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남품업체 연쇄 피해 우려
이번 개성공단 잠정 폐쇄로 인해 123개 입주기업이 입을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겪어 온 신변위협에 경제적 피해까지 떠안은 꼴이 되었으니 가장 큰 피해자는 입주기업들이다. 또한 입주기업의 거래기업과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납품업체까지 합치면 5600개사에 달해 연쇄피해가 예상된다. 북한 역시 개성공단을 폐쇄한다면 타격이 심각하다. 현재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 수는 5만3000여명이다. 근로자 가족까지 확대하면 개성공단은 25만~30여만명의 북한 주민에게 젖줄을 대고 있는 셈이다. 금강산 관광이 폐쇄된 지금 개성공단은 북한이 한국을 통해 벌어들이는 최대 외화수입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