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동물 1500만 시대를 맞아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에서 제외하는 민법 개정을 두고 사회적 논의가 뜨겁다.
현행 민법 제98조는 동물을 ‘유체물’, 즉 형체가 있는 물건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량이 동물을 일반 물건과 구별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국민적 인식과 법 사이의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에 법무부는 2021년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제98조의2 신설안을 다시 추진하며 입법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논의를 재점화하고 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동물을 ‘지각력 있는 생명체’로 규정하는 관련 법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비물건화 선언이 법체계 전반에 미칠 파장과 경제적 영향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아 생명 존중이라는 당위성과 법적 안정성을 둘러싼 찬반 대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찬성] 동물 학대 처벌 강화, 압류 금지 등...생명 존중 가치 실현해야

동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며 인간과 유대감을 나누는 지각력 있는 생명체다. 하지만 현행 법체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고의나 과실로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죽더라도 단순한 ‘재물 손괴’로 취급된다. 이에 따라 손해 배상 역시 원칙적으로 동물의 시가(市價)나 치료비 등 재산상 손해액 수준에서 그치는 한계가 있다.
최근 법원이 10년 이상 함께한 반려견의 고통과 견주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적 피해를 감안해 높은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개별 재판부의 선의에 의존할 뿐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동물의 비물건화가 이뤄진다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반려동물이 재산으로 여겨져 강제집행 및 압류 대상이 되는 비인도적 상황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또 연인 간 이별이나 부부 이혼 시 발생하는 분쟁에서도 기존의 소유권이나 누가 돈을 지불했느냐 등의 판단에서 벗어나, 양육 과정에서의 애착 관계나 동물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법적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좀 더 명확히 규정하면 동물 학대 범죄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하고, 학대 가해자에 대한 동물 사육권 제한 등 실질적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 법적 지위 개편은 유기 동물 발생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동물 판매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소유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정책 추진을 위한 법적 명분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들은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와 같은 조항을 명시해 생명 존중의 가치를 법제화했다. 사회의 가치관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 만큼 법과 현실의 괴리를 없애고, 동물권 보호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민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반대] 권리 ‘주체와 객체’라는 민법 틀 흔들려…파양, 유기 등 부작용 우려
민법은 기본적으로 권리의 주체인 ‘사람’과 권리의 객체인 ‘물건’이라는 견고한 이분법적 체계로 구성돼 있다. 동물을 물건의 범주에서 제외해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경우 소유권 귀속과 이전, 강제집행 절차, 형법상 재물손괴죄 적용 여부 등 법체계 전반에서 심각한 충돌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되면 기존 재물손괴죄를 적용하기도 어려워져 별도의 법 정비가 이뤄지기 전까지 형벌의 공백이나 형량 저하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법원행정처 등 법조계에서 권리의 객체 개념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다른 법률과의 연계 정비 필요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유지해온 것 역시 이러한 까닭이다.
사회·경제적 영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법적으로 반려동물은 개·고양이·토끼·페럿·기니피그·햄스터 등 6종으로 제한돼 있다. 그런데 민법상 동물이 비물건화되면 축산업계의 가축에게까지 동일한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동물복지 기준 강화에 따른 사육 환경 개선 등 관리 비용 급증으로 이어져 농가의 부담을 가중하고 축산물 물가 상승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혼이나 분쟁 시 반려동물 양육권에 대한 판단이 명확히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 소유권이 아니라 애정 관계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이 양육권 수준으로 조사를 진행할 법적·제도적 인프라가 부재한 상황에서 반려인 책임과 경제적 부담만 과도하게 커지면 오히려 반려동물 유기나 파양을 급증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매매나 임대차 등 동물이 거래 대상이 되는 각종 계약 관계에서 법적 확실성이 흔들려 불필요한 민사 분쟁이 늘어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나아가 동물의 법적 지위 변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와 행정력 소모에 비해 실익이 유의미하게 큰지에 대한 신중한 검토와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생각하기] 단순한 법 개정 넘어 제도 보완 이뤄져야
동물의 비물건화는 생명 존중이라는 시대적 당위와 법체계의 안정성이라는 현실적 가치가 맞서는 이슈다. 단순히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적 조항 하나를 신설하는 것에 그친다면 실무 현장에서의 혼란과 법적 불확실성만 키울 위험이 있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사람이 아닌 동물 스스로 권리를 행사할 수는 없기에 결국 소유권과 귀속 문제는 재산 분할 등 현실적 관점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반려동물과 가축 간 명확한 법적 구분 기준을 마련하고, 형법·민사집행법·동물복지기본법 등 관련 법률과의 연계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 촘촘한 후속 입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사회·제도적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 선언적 법 개정을 넘어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교한 보완책을 단계적으로 갖춰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