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남미 브라질의 커피 농장이 타들어갔습니다. 엘니뇨가 촉발한 가뭄 때문이었죠. 그해 국제 커피 선물 가격은 30% 가까이 치솟았고, 여파는 서울의 카페 메뉴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존의 이상기후가 서울 시민이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을 끌어올린 겁니다. 기상이변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밥상 물가부터 전기요금, 주식 가격, 그리고 일자리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기후경제학이 작동하는 네 가지 경로
파급 경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가장 광범위한 경로는 농업과 식량 분야입니다. 가뭄과 홍수는 곡물 생산량을 급감시켜 식품 가격 급등, 즉 ‘애그리플레이션(Agriflation)’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 가뭄으로 대두 가격이 오르면 가축 사료비가 뛰고, 이는 결국 축산물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밥상 물가를 위협합니다.
두 번째는 에너지와 인프라 경로입니다. 가뭄은 수력발전 능력을 떨어뜨리는 반면, 폭염은 냉방 수요를 폭증시켜 전력망의 안정성을 흔듭니다. 나아가 파나마 운하처럼 수위에 민감한 핵심 물류 인프라가 제 기능을 못 하면 해운 병목현상이 발생해 전 세계 교역·물류 비용이 치솟게 됩니다.
세 번째 경로는 글로벌 공급망입니다. 동남아시아 가뭄이 현지 전력난을 유발하면 그 지역에 진출한 반도체 패키징 공장들이 가동을 멈춥니다. 이런 균열은 결국 한국, 일본, 미국의 첨단 전자제품 생산 차질이라는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거시경제와 금융 경로입니다. 기상이변이 유발한 물가상승은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재난 복구에 투입되는 재정 지출은 정부의 미래 투자 여력을 소진시킵니다. 금융시장도 예외는 아닙니다. 화석연료 시설이나 해안 저지대 부동산처럼 기후변화로 가치가 급락하는 ‘좌초자산(Stranded Assets)’ 문제는 금융시스템을 흔드는 잠재적 뇌관이 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역사상 가장 큰 시장실패”
역사는 기후 충격의 실상을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가장 참혹한 사례는 1877~1878년 엘니뇨 발생 때였습니다. 인도, 중국, 브라질에 극심한 가뭄과 대기근이 동시에 덮치면서 5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당시 지구 인구의 3~4%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1997~1998년 발생한 엘니뇨는 또 다른 교훈을 남겼습니다. 인도네시아 경제학자들은 아시아 금융위기로 자국 경제가 순식간에 붕괴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엘니뇨를 지목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농업과 수력발전, 생활용수 인프라를 동시에 무너뜨려 경제 체력을 고갈시킨 상황에서 외환위기라는 카운터펀치를 맞았다는 분석입니다. 당시 엘니뇨가 전 세계 경제에 안긴 손실은 약 5조7000억 달러(현 환율로 약 8820조원, 세계 국내총생산 총합 기준)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경제학계를 깨웠습니다. 2006년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기후변화를 “역사상 가장 크고 광범위한 시장실패”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지금 당장 강력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전 세계 총생산의 5~20%가 영구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201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 예일대 교수는 기후변화와 경제성장의 상호작용을 정량화해 탄소 배출의 사회적 비용을 수치로 산출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탄소세’ 도입의 이론적 근거가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