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그의 왼편에 김 위원장, 오른편에 푸틴 대통령이 자리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서방 진영을 향해 자신들의 결속력을 선보이는 무력시위 같았습니다.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달라 북·중·러 3국 합동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반미(反美) 연대를 공식화하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분위기는 역력했죠. 이 때문에 결국 ‘신냉전(New Cold War)’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이 체제 경쟁에 몰두하고 군사적 긴장 또한 고조되던 시기가 1950~1980년대 냉전기였습니다.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인류 위기를 걱정해야 하던 때였죠. 중국 전승절 행사에선 ‘트럼프 대(vs) 푸·시·킴(푸틴, 시진핑, 김정은)’이라는 대결 구도가 확연히 드러나 신냉전이 기우만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중국 중심의 브릭스(BRICS)와 같은 국제협력 모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합니다. ‘하나의 시장’을 중심으로 번영하는 지구촌을 만들려던 이상이 퇴보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대립과 갈등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를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핵전쟁 공포 엄습하던 냉전 뒤로하고 시장경제 확산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

역사와 시대의 변화는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방향이 정해진 물줄기는 돌려세우기 어렵고, 역행하는 움직임은 얼마 못 갑니다. 지금의 세계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 미래는 어떻게 다가올지 감을 잡으려면 잠깐 물 밖에서 넓은 시야로 조망해야 합니다. 신(新)냉전의 우려가 커지는 요즘, 20세기 냉전 이후의 세계사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가운 전쟁’의 시작
냉전(Cold War)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경부터 1991년 옛 소련(소비에트연방) 붕괴 전까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진영이 정치·이념·군사·경제적으로 대립하며 벌인 긴장 상태를 뜻합니다. 전면전은 없었지만, 그에 필적하는 위기 상황이 상존했기에 탄생한 용어입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당시 미국 코앞인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배치되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미국은 군사 봉쇄로 대응하며 핵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철(鐵)의 장막’ 연설이었어요.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도 참석한 미국 내 행사에서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지역이 소련의 주도하에 속속 공산화하는 현실을 경고하고 영국, 미국, 캐나다가 튼튼한 동맹을 맺어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자는 요지를 담았죠. 이듬해인 1947년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됩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기존의 고립주의(먼로 독트린)에서 탈피해 외교정책의 기조를 적극적 개입주의로 전환합니다. 최근 신조어 ‘돈로 독트린’(도널드 트럼프+먼로 독트린)도 이와 관련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예전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되,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철저히 관철시키는 팽창주의 욕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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