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국회 의결로 해제되면서 최악의 국가적 대혼란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회의 대통령 탄핵 소추, 검찰·경찰의 대통령 내란혐의 수사를 둘러싸고 후폭풍이 일파만파입니다. 극도로 불안한 정국이 지속되면서 증권·외환시장은 물론 수출, 관광 등 내수와 안보 분야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호(號)의 총체적 위기입니다.
지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요? 일각에선 대통령제라는 정부 형태의 한계 또는 위기가 전면에 드러난 것이란 분석을 내놓습니다. 거대 야당이 출현하면 의회와 행정부(대통령) 간 갈등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으로 격화합니다. 대통령제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한 사람의 성향과 판단에만 의존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극한으로 대립하는 의회와 행정부(대통령)가 언제든 국가를 나락으로 빠뜨릴 위험이 있는 거죠.
대통령제는 완결된 정부 형태도 아니고, 언제든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정부 형태와 관련한 논의가 향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런 문제와 함께 국가비상사태 때 발동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이 어떤 것이 있고, 헌법에서는 관련 조항이 어떻게 변화돼왔으며, 선진국의 국가긴급권 법제는 어떠한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헌법으로 국가비상사태 대응 수단 규정 초법적인 권한 행사 엄격하게 통제하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헌법은 국가비상사태의 종류를 열거하고, 각각의 경우 국가수반이 국가긴급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전쟁·내란·경제공황, 대규모 자연재해 등이 발생할 경우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국가수반에게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권한을 부여합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76조는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가 벌어졌을 때 ‘긴급재정경제명령’을,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가 발생하면 ‘긴급명령’을 대통령이 내릴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명령’은 법률의 효력을 갖습니다. 다음으로 제77조에선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죠.
“국가긴급권, 헌법 파괴할 수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헌법은 국민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습니다. 국가비상사태에 발동할 수 있는 초법적 비상 권한은 이러한 헌법 정신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대통령은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습니다(헌법 제77조 제3항). 그래서 국가긴급권의 발동 목적과 조건·내용·절차 등을 헌법에 직접 규정해 이른바 ‘입법적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의회에 국가긴급권 해제 요구·승인 등 권한을 줘 ‘정치적 통제’를 하고, 위헌 여부의 판단을 구할 수 있는 ‘사법적 통제’도 가하죠. 국가긴급권은 독재적 권력을 합법화하는 만큼 관련된 헌법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그렇지 않고 관련 규정을 넓게 해석하거나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 국가긴급권을 마련해둔 취지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눈길
국가긴급권의 기원은 로마공화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화국이 중대한 위기에 처해 평상시 행정체제로는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고 원로원이 확신할 때, 집정관 등이 한 사람의 독재 권력자를 지명하고 절대권을 부여했습니다. 각국의 헌법에서 국가긴급권이 제도화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제헌헌법 때부터 계엄선포권과 긴급명령·긴급재정처분권을 도입했습니다. 1972년에 제정된 제4공화국 헌법(일명 유신헌법)은 국가긴급권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에게 방대한 긴급조치권을 부여했습니다. 결국 긴급조치 9호까지 발령되며 국민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현행 1987년 개정 헌법의 긴급재정경제명령권과 긴급명령권은 과거의 긴급조치나 비상조치권에 비해 대통령 권한을 많이 줄였습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대표적인 예는 1993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며 내린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입니다. 한편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번까지 계엄령은 총 18회 내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비상계엄은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 당시(8회)를 제외하면 박정희 정권(3·4공화국) 때 6회로 가장 많이 발령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