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인공지능(AI)이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해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24 세계대전망>에서 ‘현실로 다가온 AI’를 중요한 흐름으로 꼽았죠. 9일부터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최첨단 기술의 경연장 소비자가전쇼(CES)도 온통 AI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CES 기자회견의 표어를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로 정했고, 인텔은 ‘모든 곳에 AI(AI Everywhere)’를 내세웠습니다.
AI로 사람들의 생활과 산업현장에서 도움을 받겠지만 꼭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벌써부터 AI의 ‘일자리 습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작년 IBM, T모바일, 드롭박스 등 테크기업들이 회계·인사 등 지원 부서 인력의 30%까지 AI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AI가 오히려 재앙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이러다 보니 빅테크의 본고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AI 개발을 자유롭게 허용할 것이냐, 인류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규제할 것이냐를 놓고 일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말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축출과 복귀도 이런 갈등에서 시작된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끕니다. ‘AI 개발 감속이냐, 가속이냐’를 둘러싼 논쟁의 철학적 배경과 견지해야 할 관점을 4, 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빨리 개발 안하면 죽는다" vs "속도 조절해야"AI 낙관론과 파멸론, 종교전쟁 방불케 해요
인공지능(AI) 개발 속도를 둘러싼 미국 내 개발자 간 논쟁은 먼저 소셜미디어를 달군 뒤, 신문 등에서 경쟁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도 AI 개발 예찬론자인 베프 제이조스(소셜미디어 X의 활동명)가 X에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이라며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의 밤 모습을 올려 화제가 됐죠. 불빛 찬란한 한국에는 ‘e/acc(Effective Accelerationism, 효과적 가속주의)’란 글자를, 캄캄한 북녘 땅엔 ‘Decel(Decelerationism, 감속주의)’이란 약어를 붙였습니다. AI 개발을 통제(감속)하면 북한처럼 미개한 사회로 전락하고, 자유롭게 허용하면 한국처럼 문명이 꽃필 거라는 주장입니다. AI의 자유로운 개발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거죠.
오픈AI CEO 갈등으로 비화
현재 AI 개발자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효과적 가속주의와 효과적 이타주의(EA·Effective Altruism)입니다. 효과적 가속주의란 용어는 효과적 이타주의를 패러디해 만든 것 같습니다.
효과적 가속주의의 요지는 기술 발전은 무엇이든 세상에 이롭기 때문에 모든 규제와 안전장치를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AI의 해로움보다 이점이 훨씬 많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속주의자들은 모임에서도 “개발하지 않으면 죽는다(Accelerate or Die)” “AI를 자유롭게(Keep AI Open)”라고 외칩니다. 생성AI 챗GPT 개발 회사로 유명한 오픈AI의 샘 올트먼이 이 진영에 속해 있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베프 제이조스를 X에서 팔로(follow)하는 중입니다.
반면 효과적 이타주의자들은 AI 규제가 먼저라고 주장합니다. 인류에게 이익이 되도록 AI를 개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게 바로 21세기 이타주의라는 거죠. 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전하게 AI를 개발해야 하고, 이를 위한 기술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AI 감속주의’라고도 부릅니다. 작년 전 세계 과학자 1000여 명이 세계의 모든 AI 연구소에 “GPT4(최신 챗GPT)보다 더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하라”고 촉구한 게 그런 목소리입니다. 작년 6월 유럽연합(EU)이 위험성이 높은 AI의 개발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도 했죠.
양 진영의 주장은 결국 ‘파멸론-이타주의(감속주의)-기술 통제주의’와 ‘낙관론-가속주의-기술 유토피아주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논쟁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종교 분립 전쟁과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뜨겁습니다. 작년 말 오픈AI 이사회가 샘 올트먼 CEO를 축출하려 한 사건도 이런 대립에서 비롯됐습니다. 오픈AI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인 일리야 수츠케베르를 비롯해 오픈AI 이사회 멤버들은 ‘착한 AI’를 만들려는 감속주의자가 많았는데, 샘 올트먼은 AI 칩 개발과 투자 유치 등으로 회사의 빠른 성장을 원했다는 겁니다. 결국 직원들의 지지를 받은 샘 올트먼이 CEO로 복귀하고 일부 이사들이 물갈이되면서 오픈AI 사태는 일단락됐는데요.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머(Doomer, 파멸론자)의 패배”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