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필요악인가 사법살인인가 “법은 살인을 방지하는 데 존재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법이 살인을 허락하고 있다. 어떻게 모든 가치의 최고인 생명을 빼앗을 권능을 국가에 양도했다고 할 수 있는가. 국가는 개개인의 욕망을 조용히 누그러뜨리는 조절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러한 국가에서 사형과 같은 쓸모없는 잔혹성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체사레 베카리아,‘범죄와 형벌’ 중에서
근대 형법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체사레 베카리아(Cesare Beccaria·1738~1794)는 저서 ‘범죄와 형벌’에서 사형제 폐지 논리를 이렇게 설파했다. 1764년 그가 이 논문을 발간한 이후 근대 유럽에선 본격적으로 사형제 존폐 논쟁에 불이 붙었고 그 화염은 248년이 지난 지금도 꺼지지 않고 있다. 근·현대 지성사에서 사형제 폐지를 옹호하는 법철학적, 종교적, 사상적 논변들이 많지만 대체로 체사레 베카리아의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다.
사형제 폐지 주장은 다섯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생명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이다. 인간이 국가를 형성하면서 개인은 최소한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것은 사실이다. 국가라는 공동 울타리를 형성하려면 일부의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가치 중의 가치인 생명권까지 국가에 양도한 것은 아니다. 비록 범죄인이라고 해도 하나뿐인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생명의 절대성 관점에서는 또 하나의 살인일 뿐이다. 개인에게 금지된 살인을 국가에 허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18세기 계몽주의가 태동하기 이전 횡행하던 태형, 거혈형, 화형이 인간 존엄 관점에서 없어진 마당에 근대와 현대 국가에서 사형을 유지하는 것은 인류의 사상 진화에도 거스른다.
#형벌은 교화가 목적
둘째로 사형제는 형벌의 목적에도 어긋난다. 형벌의 목적은 죄를 지은 범죄자를 교육하고 교화시켜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사형은 교육과 교화의 기회를 완전히 없애버린다. 빅토르 위고의 ‘사형수 최후의 날’에서 보듯 죄인은 참회를 통해 인간성을 완전히 회복한다. 비록 한 때의 잘못으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위고는 소설로 그려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살인범(모건 프리먼)이 가석방 면접에서 참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비록 영화였지만 실제 인간세상에서 이런 참회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영화에서 그는 “내가 체포됐을 때를 돌아보면 한 못난 젊은이가 끔찍한 죄를 저지른 거야. 그 젊은 녀석은 오래 전에 없어지고 이 늙은 놈만 남았어”라고 참회한다.
셋째로 사형은 범죄 억제효과가 없다. 사형 찬성론자들은 사형제의 위하력(겁을 주는 힘)이 잠재적 범죄를 예방한다고 주장한다. 사형이 없다면 출소한 이후 같은 범죄자가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극형이 없다는 이유로 유사한 행동이 발생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어떤 연구조사에서도 사형제 폐지 이후 살인사건이 늘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캐나다의 경우 1975년 사형제 폐지 직전 10만명당 3.09명이 살해됐으나 1980년엔 2.4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10년 뒤에도 살인율은 2.19명으로 또 감소했다.
#범죄 예방효과도 없어 범죄예방적 측면이라면 사형보다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해두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몇 해 전 사형폐지국인 이탈리아의 무기수 700여명이 거꾸로 사형제 부활을 요구한 적이 있다. 그들은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한 번에 죽고 싶다”고 했다.
넷째, 오판과 악용의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사형은 살인만큼이나 희생자와 그 유족들을 회복 불능 상태로 빠뜨린다. 사형이 확정된 뒤 진범이 잡혀 무죄가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시대상황과 정치상황에 따라 사형이 악용될 여지도 많다. 식민지 시대 사형수는 정치범들이다. 정치적 후진국에선 정적을 반란죄로 몰아 죽이기도 한다. 사형 집행 뒤 무죄가 입증되면 오판한 국가와 판사를 처형할 수 있는가? 국가가 전지전능하다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오판에 의한 사형을 정당화시킬 근거도 없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사형 직전에 황제의 특사에 의해 사형을 면하지 않았던가. 그가 죽었다면 ‘죄와 벌’은 존재하지도 못했다.
#오판의 가능성, 사형→무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