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어느 날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내에서 집회가 열린다. 집회는 첨예한 찬반 대립을 보이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것이다. 집회가 가능한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26일 공포한 학생인권조례 17조 덕분이다. 이 조항은 16개 시·도교육청 중 처음으로 학생들의 교내 집회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교정 한쪽에선 찬성집회가, 다른 한쪽에선 반대집회가 열린다. 이런 집회를 보는 시각 역시 둘로 나뉠 수 있다. 학생들도 이런 집회를 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과 대학생도 아닌 어린 학생들이 교내에서 무슨 집회냐는 시각이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지겠느냐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금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의 격렬성과 교육노선들의 전투성을 감안하면 가상 시나리오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존재한다.
이번 학생인권조례와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진보든 보수든 학생인권조례가 구현하려는 학생인권 향상 명분에는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별 조항이다. 학생인권조례를 먼저 공포한 경기도교육청과 광주광역시교육청보다 서울시교육청 조례에 대한 반대가 심한 이유도 학생인권만 강조하고 교사의 교권과 학생의 책임조항이 전혀 없는 개별조항의 맹점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조항별로 보면 제3조는 학생인권의 보장원칙을 담고 있다. 학칙과 학교, 교사는 학생인권조례가 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할 수 없도록 못박고 있다. 이 조항은 최소한 제한할 수 있도록 학교에 융통성을 부여한 경기도와 아예 조항이 없는 광주보다 더 강한 것이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은 “생활태도, 학습태도가 다른 아이들에 대해 손을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방관교사,나몰라라 교사가 되라는 말과 같다”고 반발한다. 반대 측은 “아예 예외조항을 안 둬야 학생인권이 보호된다”는 입장이다.
제5조는 최대 논란거리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한 이 조항은 임신, 출산, 성적지향 때문에 차별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성별, 종교, 나이,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피부색으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경기도는 같은 조항이 있지만 광주는 임신, 출산은 제외시키고 있다. 반대교사들은 임신 출산이 들어감으로써 임신 출산에 대한 사회적 압력, 도덕적 압력의 메커니즘이 사라지게 됐다고 우려한다. 임신한 학생이 있을 경우 보다 더 예민하게 관리하고 보호해주는 게 학교현장의 현실인데 임신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조례가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제12조 역시 논란이다. 학생들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보장한 12조는 학교는 학생의 의사에 반해 복장과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다만 복장은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두발의 길이와 염색 여부에 대해 어떠한 규제도 할 수 없다. 교사가 제한하거나 꾸짖을 경우 인권탄압에 해당된다. 논란은 또 있다. 복장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전제해 놓고선 뒤에 학교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교사들은 ‘제한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를 알기 힘들다’고 말한다. 복장에 화장, 피어싱, 귀걸이가 해당되는지도 애매하다. 제16조는 양심 종교의 자유 조항으로 학교 설립자가 종교단체라고 해도 학생의 의사에 반해 종교과목이나 아침 종교행사 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사립학교의 경우 설립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해당 조항은 종교의 자유를 최우선시 하고 있다.
제17조는 의사 표현의 자유를 위해 집회를 허용하고 있다. ‘집회의 자유’ 조항이 없는 경기도와 광주광역시와 달리 학생들의 집단행동이 서울 초·중·고교에선 가능해졌다. 학생들이 모의고사 반대, 방과후 수업 반대 등을 내걸고 집회를 하더라도 교사들은 원칙적으로 막기 어렵다.
논란이 적은 부분도 있다. 제6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물리적,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학생을 보다 인격적으로 가르치도록 했다. 또 9조는 0교시 수업이나 방과후 수업, 자율학습, 교내외 행사 등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불참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했다.
서울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센 것은 조례 제정을 주도한 측의 소통 부재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학교현장의 현실을 가장 잘 아는 교사들의 우려를 고려해 충실하게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는 것. 이미 학교는 일부 학생들의 비뚤어진 해방감과 교사의 무력감이 겹쳐 붕괴직전이다. 학교 현실을 무시한 이상적인 조례라는 비판과 이상을 향해 가야 한다는 찬성 주장으로 새학년을 앞둔 학교 현장은 깊은 딜레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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