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합리적이어서 존엄하다고?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 소설의 주인공은 언제나 지하생활자다. 그의 대표작 '죄와 벌'에서 살인을 저지른 라스콜리니코프도 그렇고,이 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이상한 캐릭터를 통해 하나의 위대한 사상을 말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자유에 있으며, 자유는 이성보다 비합리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 주인공이 하나같이 엉뚱하고, 변덕스럽고 기괴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19세기를 지배하던 합리주의적 사상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간과했지만 자연을 분석하던 도구인 이성은 인간을 분석하는데 사용되었고, 이성에 의해 분석되고 설명되는 인간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하였다.
당시의 사상가들은 이성만 있으면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은 사회를 바꿀 수 있으며, 인간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에 주목했다. 지금까지 인간이 진보하지 못한 이유는 교육의 부재 때문이었고, 따라서 교육된 문명인은 구시대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합리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했다. 문명이 인간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인간은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피아노 건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인은 이성에 의해 설명되지 않으며,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짓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원문 읽기 나의 생활은 음울하고 방탕하며 야생에 가까울 만큼 고독했다. 나는 아무하고도 교제하지 않고, 말을 주고받는 것조차 피하면서 점점 나의 구석진 세계로 기어들었다. 근무처에서도 사람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동료들은 나를 괴짜 취급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 분명히 눈치 챌 일이지만 사뭇 역겨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겁먹은 마음으로 남몰래 더러운 음탕에 빠지곤 했다. 수치심은 아무리 추악한 행위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때는 자신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다. 이미 그 무렵부터 내 마음속엔 지하생활자의 심리가 자리잡고 있었다. 어쩌다 남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누구와 맞부딪치지나 않을까, 누가 내 얼굴을 알아보지나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하는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되도록 어두운 곳을 골라서 싸다녔다.
▶해설=지하생활자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다. 이러한 인간 유형은 도저히 정상이라거나 평범하다고 할 수 없다. 자기를 학대하고, 고통 속에서 쾌감을 발견하는 그의 모습은 합리적인 인간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원문 읽기 인간이 추악한 짓을 하는 것은 오직 자기의 참 이익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인간이란 그 지성을 일깨워주고 자기의 진짜 이익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눈뜨게 해주기만 하면 이내 더러운 행위를 집어치우고 선량 결백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계몽된 지성을 지니게 되고 자기의 진짜 이익을 알게 되면 선행 속에서 자기 이익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기 이익에 반대되는 짓을 일부러 할 리는 만무하므로 필연적으로 선을 행하게 될 것이다'하는 식의 논리다. 아아, 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가!
▶해설=이 말을 최초로 한 사람은 합리주의의 시조인 소크라테스다. 그리고 이후의 모든 서양철학은 이에 기초한다. 합리주의는 인간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현대의 경제학 이론도 이런 합리적 인간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사회 개혁과 함께 교육을 통한 인간성 개선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도 마찬가지로 이런 합리적 인간관에 토대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