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제3의 침팬지』 등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룬 인류학 저서를 통해 인류의 기원과 발전,그리고 미래에 대한 차분하고 날카로운 관점을 제시해왔다.
특히 『총·균·쇠』에서는 해박한 인문·사회·지리·생물학적 지식을 이용해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문명 격차의 원인과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스스로 밝히는 이런 집필 목적 외에도 행간에서 읽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시적 통찰의 양과 질이 만만치 않다.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력이 역사 발전의 힘인지,아니면 환경이 가능하게 하고 또 강요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또 서양 문명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자신의 민족에 대해 종족적 열등감이나 반발적으로 국수주의적 태도를 가진 사람도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그런가 하면 교과서에 나오는 아놀드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서의 인간 발전 법칙도 핵심적인 논리로 등장한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비교적 최신 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세대의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로서 고전의 의미에 부합하는 명저로 평가받는다.
1.의문의 시작
◆원문 읽기
얄리는 그날 나에게 했던 것처럼 이미 많은 백인들에게 질문을 퍼부었고,나 역시 수많은 뉴기니인들에게 질문한 경험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뉴기니인들이 적어도 유럽인들에게 지지 않을 만큼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 순간 얄리는 아마도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다시금 그 번뜩이는 눈빛으로 나를 찌를 듯이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물품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 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물품들을 만들지 못한 것입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얄리가 경험한 삶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 그렇다. 평균적인 뉴기니인의 생활 양식과 평균적인 유럽인이나 미국인의 생활 양식 사이에는 아직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와 같은 생활 양식의 격차는 세계의 다른 여러 민족들 사이에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격차가 벌어진 직접적 원인에 대한 설명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백하다. 어떤 민족들은 총기,병원균,쇠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정복하여 남보다 먼저 정치,경제적 힘을 얻었다. 반면에 어떤 민족들은 끝까지 그와 같은 힘의 요소들을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해석=얄리와 저자 사이의 대화는 책의 집필 동기로서 '문명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뉴기니 원주민 얄리의 눈빛은 왜 번득였을까? 질투 때문이었을까? 인간의 능력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의 대화이지만,질투를 넘어 '문명 격차'의 발생 원인에 대한 순수한 의문으로 쉽게 전환하는 쪽은 질투로부터 자유로운 '서양인' 제러드 다이아몬드였다.
'문명 격차'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문명 간에 우열관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고,또 다른 하나는 문명 간에 형태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라는 의미이다. 전자는 서양의 물질 문명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므로,'문명 격차'를 언급하는 사람은 항상 후자의 의미라고 사족을 달곤 한다.
그러나 두 가지 관점이 과연 다른 것인지는 의문이다. 형태의 차이는 생산·소비하는 물질의 종류와 질,양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문명 격차' 문제는 전 세계적 차원에서 존재하는 문제다. 동아시아 원주민인 우리에게는 동·서양 문명 격차로,아프리카 원주민이나 얄리 같은 뉴기니 원주민들에겐 흑인종·백인종 간의 격차로 인식된다.
'문명 격차'는 멀리 떨어져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는 게 병'이라서일까? 이렇게 서로 다른 양식의 문명이 지리적 격리를 뛰어넘어 만나게 될 때 '문명 격차'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흑인 노예제도,종교갈등,질병의 세계적 만연 등 이른바 세계화의 문제다. 세계의 생활 양식이 질적·양적으로 통합돼 간다지만,유럽의 생활 양식을 받아들인 지역의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지금도 과연 그 격차가 줄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