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가 되고 싶다면
그 회사의 본사가 있는 나라로 가라"
지난달 2일 서울 하얏트 호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기자회견장. 4500만 국민들의 눈은 양국 협상단 대표들에게 고정돼 있었다.
그때 회견장 뒤쪽에서 잠시 카메라에 모습이 잡힌 한 미국인. 엷은 미소를 띠고 양측 대표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는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모임인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윌리엄 오벌린 회장이었다.
미국 보잉사의 한국법인(보잉코리아) 사장이기도 한 오벌린 회장은 올해로 22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지한파 미국 기업인.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딸 마리를 낳아 한국에서 키우고 있다.
1년 임기의 암참 회장을 올해로 세 번째 수행하고 있는 그는 수 년 전부터 양국 정부에 FTA 필요성을 강조한 한·미 FTA 타결의 '숨은 공신'이기도 하다.
오벌린 회장은 어떤 사연으로 한국에 자신의 인생을 걸게 됐을까.
"저의 현재 모습은 그저 작은 선택들이 모여서 이뤄진 결과입니다.
거대한 계획(마스터 플랜)을 세워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죠. 지금 다시 선택하라면 아마 다른 선택들을 했을 것이고 그러면 제 모습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달라요.
한국에 살지 않을 선택을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저는 매번 한국을 선택했죠."
오벌린 회장은 194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나 인디애나의 한 작은 마을에서 자라난 평범한 미국인이다.
어린시절이라고는 온통 옥수수밭에 둘러싸인 지루했던 기억뿐이다.
그러나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정치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신념에 대해 배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가 15살 때인가 아버지께서 인디애나주 내무부 장관 선거에 나가셨는데 낙선하셨죠. 저는 무척 화가 나 있었는데 부모님이 저를 앉혀 놓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번 선거에서 논란이 된 이슈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평소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는 졌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신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라고요."
인디애나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성년이 되자 공군에 입대, 꿈에 그리던 전투기 조종사(파일럿)가 됐다.
전투기 조종사는 민간 항공기와는 달리 혼자서 비행기를 몰아야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그는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능력을 배웠다.
날씨의 변화, 기류의 변화 등 시시각각 변화하는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