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의 가르침 중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뜻이다.
이채욱 GE코리아 회장(60)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칭 명문대를 나오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가정교사를 하면서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을 정도로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그를 세계 초일류기업의 한국지사장으로 이끈 큰 힘은 다름아닌 마음먹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을 평가할 때도 능력 이전에 정신자세를 중시한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이 이 회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낙천적이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이라거나 "남다른 열정을 인생의 참된 에너지로 승화시킨 지혜와 그 속에서 우러나는 독특한 인간적 향기가 느껴진다"(이구택 포스코 회장)는 것이다.
이 회장의 성장기는 결코 유복하지 못했다.
경북 상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6·25 때는 부모님과 피난길에 올라 산 속에 움막을 치고 살았던 경험도 있다.
장학생으로 고등학교(상주고)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장학생 자격을 잃는 바람에 학비를 대지 못해 학교 다니기를 중단하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 지역 유지였던 병원장의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어렵사리 학업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 당시를 불행했던 시절로 기억하지 않는다.
"입주 가정교사를 할 때 동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어린애가 남의 집에 들어가 눈칫밥 먹으면서 고생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정작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부잣집에서 쌀밥에 고기 반찬을 먹고 내 방도 따로 있었고.그러니까 항상 신바람이 났죠."
이 회장은 1972년 삼성물산에 입사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때 이 회장은 삼성물산과 동명목재라는 기업을 놓고 저울질을 하다 결국 삼성물산을 택했다.
급여 수준은 동명목재가 50% 정도 더 높았지만 장래성과 비전을 생각했을 때 삼성물산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던 시절에 종합상사에 입사해 수출입국(輸出立國)에 기여하겠다는 야망이 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이 회장은 특유의 성실성과 열정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갔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1980년 초년 과장으로서 고선박 해체사업을 담당했을 때였다.
당시 이 회장은 미국 출장 중에 낡은 선박에서 고철을 분리해내 철강회사에 판매하는 '고선박 해체사업'을 보고 이를 한국에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은 미국에 비해 인건비도 저렴하니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