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7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그룹 연수원 대강당.4주간의 신입사원 연수가 끝나 '새내기'들이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번쩍 손을 들고 일어선 한 신입사원의 얘기는 연수원장의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당돌했다.
"솔직히 말해서 삼성의 신입사원 교육에 실망했습니다.
경쟁 그룹인 현대에선 정주영 회장까지 직접 나와 신입사원들과 씨름을 한다는데,우리는 이게 뭡니까?"
강당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구대장과 교육 조교들은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지만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신입사원 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갔다.
그로부터 27년 뒤인 2004년 3월, 이 당찬 청년은 삼성전자의 4대 사업부 중 하나인 디지털미디어부문의 총괄사장으로 선임된다.
그가 바로 최지성 사장(55)이다.
당시 조교를 맡았던 김인 삼성SDS 사장이 그때 일을 떠올리며 축하 전화를 했다.
"세상 참 모를 일이야.일년도 다니지 못할 줄 알았던 자네가 사장까지 올랐으니 말이야."
최 사장은 강원도 삼척시 사직동이 본관으로 울진 근처에서 태어났다.
춘천중학교를 졸업한 뒤 춘천고를 1년 정도 다니다가 서울로 가기 위해 다시 서울고 시험을 봤다.
학창 시절 별명은 딸깍발이였다.
'딸깍발이'는 원래 '남산골 샌님'의 별칭으로 꼬장꼬장한 자존심에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를 갖고 있던 선비들을 가리키는 말."제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거든요.
거기에다 매사에 잘 따지고 들었어요."
1971년 서울대 무역학과에 들어갔지만 '딸깍발이'의 대학 생활은 순탄할 수가 없었다.
당시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그는 유신 타도 등을 외치며 데모에 나섰다가 일찌감치 공안당국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는 ASP(Anti Government Student Power)라는 군 당국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
고생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원주 38사단 신병훈련소를 마치고 나온 그는 전차병 주특기를 받아 전남 장성군의 제11전차 대대에 배속됐다.
한겨울 혹한훈련을 나가 M46이나 M47 같은 미국제 탱크 안에서 덜덜 떨며 갖은 고생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뒤에는 끓는 피를 억제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전했지만 개인적인 한계를 느끼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미래를 위해 준비하자고 정리를 했던 것 같아요."
최 사장이 연수원에서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일류를 지향하는 삼성이 몇 마디 쓴소리에 신입사원의 합격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