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영자 가운데 AQ(Adversity Quotient·역경지수)가 가장 높은 경영자는 누구일까? AQ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폴 스톨츠 박사가 1997년 처음 개발한 지표로 자신에게 역경이 닥칠 경우 이를 극복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준다.
이 지표대로라면 현직 경영자 중에는 국내 최대의 정유사를 이끌고 있는 신헌철 SK㈜ 사장(61)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홀어머니 밑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과 결핍,성실한 준비에 뛰어난 실력을 갖고도 대학입시에 두번이나 낙방했던 불운,예기치 않은 사태로 7개월이나 늘어나버린 군복무….
유년은 불우했고 청년기 또한 눈물과 좌절이 지배했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철없이 뛰어놀던 해운대 바닷가는 조숙한 신 사장에게 세월의 신산(辛酸)을 곱씹게 만드는 풍경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는 꺾이지 않았다.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은 그대로 참고 도중에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자 했다.
산산이 조각난 꿈의 파편들을 집어들고 절망하거나 잠들지 않았다.
대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애썼다.
해산물 수송업에 종사했던 신 사장의 부친은 1955년 사망했다.
신 사장이 해운대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가세가 급격히 기운 것은 불문가지.그 시절의 가난한 학생들이 대개 그랬듯 신 사장도 은행원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상고에 진학했다.
부산상고 시절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그는 당시 부산출신의 기업가 김지태씨가 운영하던 '백양장학회'의 장학생이 됐다.
이 때 같이 장학금을 받았던 사람들이 동기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1년 아래의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2년 아래의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편안한 길을 안내하지 않았다.
1963년 겨울,지금도 절친한 친구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서울대 상대에 도전했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당시 서울대 상대에 수석 입학했던 이 총재는 "헌철아,너무 실망말거라.내년에 시험 다시 쳐서 서울에서 만나자"고 위로했지만 1964년의 재도전에서도 그는 실패했다.
"국어시험에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을 다룬 문제가 나왔습니다.
상고를 다닌 탓에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작품이었어요.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지난 수년간 죽을 힘을 다해 학업을 뒷바라지했던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울었다.
자신보다 못한 학교 성적으로도 너끈히 합격했던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불운을 한탄했다.
다시 1965년 겨울.절치부심의 세월을 보낸 터였지만 이번에도 낙방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예감은 불길했고 몸은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