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에 대한 사라진 열정
그런 책들이 있다. 책장을 열기 전 표지와 저자의 이름을 번갈아 쳐다보고 눈대중으로 두께를 가늠해보며 마라톤 출발선상에 선 선수처럼 긴장과 흥분, 기대와 각오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게 되는 그런 소설 말이다. 또 그런 작가들이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는 어떤 높이(깊이가 아니다)에 절망해 망연자실, 또 한숨을 내쉬게 되는 그런 작가 말이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이 바로 그런 소설, 그런 작가다.
루슈디는 말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기 위해선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고. 그리고 자신의 말마따나 마치 이 세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듯 무시무시한 공력으로 뭔가를 엄청나게 쏟아낸다. 그것이 단지 이야기뿐일까? 무수한 사람의 이름과 사물의 이름, 수많은 지명과 풍경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순간에 태어난 살림 시나이란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여자와 남자, 부자와 가난뱅이, 힌두와 이슬람, 인도와 파키스탄, 혁명가와 도망자, 영국인과 인도인 등 모든 것이 뒤섞인 가계의 역사를 장구하게 펼쳐 보인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지간한 소설 한 권 분량 정도가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빅뱅처럼 그순간 모든 것이 시작된다. 국가가 탄생하고 한 남자의 인생도 같이 시작된다. 그것도 태어나는 순간 조산사에 의해 다른 아이와 바꿔치기 당한 채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복잡하게 시작된 그의 생은 그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그가 겪고 보고 실천한 모든 일과 그가 당한 모든 일, 즉 혼돈에 빠진 인도 전체(근작 『광대 샬리마르』에서 루슈디는 ‘인도는 이해할 수 있는 혼돈’이라는 말을 했다), 나아가 세계 전체이므로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 안에 없는 게 뭘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모든 게 다 들어 있으니까.
소설 속에서 한 인물의 전 생애를 다루려는 야심은 사라졌다. 이제 그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그래서 촌스럽고 낡은 꿈이 된 것일까? 서사는 사라졌고 소설은 점점 더 얇아졌다. 언제부턴가 날카롭고 반짝거리는 것에의 탐닉과 스틸 사진처럼 정지된 아름다움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앙상하고 얄팍한 소설에 질려버렸다(나는 그것을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소설’이라고 부른다). 벼룩처럼 하찮은 소재로 어찌 위대한 불후의 명작을 쓰겠는가!(허먼 멜빌의 말이다.)
한낱 달콤하고 요사스러운 단어의 나열이 소설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은 스틸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다. 소설은 움직이는 것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소설은 시가 아니며 에세이는 더더욱 아니다. 소설은 밑줄 긋는 문장의 나열이 아니다. 소설은 직접적인 언술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작 말해져야 할 바는 이야기 속에 침잠되는 법이다.
나는 여전히 긴 이야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한 손으로 들기에도 버거운 두툼한 책을 만질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충족감을 느낀다. (최근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다. 그것을 끝까지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베개 대용으로 써도 좋을 만큼 두꺼운 그 책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는 수많은 생각과 이야기들, 수많은 문자를 수집한 한 인간의 지난한 노동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 두께 안에는 수많은 인간군상과 다양한 풍속, 당대를 기록하려는 차가운 산문정신, 그리고 덧없이 스러져가는 시간을 담아내려는 꿈이 담겨 있다. 강물처럼 흘러가고 말처럼 달려가는, 그들의 이 ‘전체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나를 흥분시킨다. 고백하자면 루슈디는 진심으로 내가 표절하고 싶은 작가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만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를 표절할 각오가 되어 있다.
후일담 하나. 루슈디는 스스로 자신이 인도의 구전문학 전통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그가 인도에서 강연을 할 때 한 독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책은 제가 쓸 수도 있었어요. 저도 다 아는 이야기였거든요.”
나는 특별히 소설가만이 알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그런 이야기가 좋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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