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마주한 오늘
제임스 웰든 존슨의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은 그 제목만으로도 나를 확 끌어당겼다. 책을 주문해놓고 이 책이 도착할 때까지, 나는 몇 번인가, 난에 물을 주거나 아이들을 위한 간식을 만들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았으며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흑인으로서의 그 한때는 지금, 이 남자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흑인이었음을 철저히 부정하고, 혹은 위장한 채 사는 삶, 그 남자의 오늘의 삶은 아무래도 그러……하겠지.
창밖의 나무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잎이 없는 가지들을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어 올린 채 힘겹게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그리고 지금 나의 내부의 풍경처럼 보였다.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내 삶의 큰 비밀, 지난 몇 년 동안 내 어떤 재산이나 소유물보다도 더 마음 쓰며 지켜온 비밀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음을 잘 안다.”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범행 사실을 털어놓아야만 하는 자의 고백으로 그 첫줄을 시작하고 있었다. 일종의 고백록인 이 자서전의 ‘나’는 백인처럼 보였고, “참 예쁜 아드님을 두셨군요”라는 감탄을 어머니에게 선물하며 살았다. 그러나 운명의 그날, 교장 선생님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의 세계에 들어와 “백인 학생들은 잠시 모두 일어서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다른 백인 학생들과 함께 일어섰다. 교장 선생님은 “넌 잠시 앉아 있다가 나중에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일어나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바로 흑인, 깜둥이들이었다. 몇몇 백인 아이들의 “그래, 너도 깜둥이였구나”라는 조롱과 함께 한때 백인이었던 ‘나’는 흑인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을 드러내어 나의 감정과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점점 더 두려워졌으며, 의도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도 모욕당했다고 느끼거나 그렇게 상상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에게는 어울릴 법하지 않은 그런 강한 열정으로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죽고 고향 마을을 떠나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나는 음악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도피처였고, 도피처였기에 상상과 꿈과 공중누각의 세계였다. ‘나’는 재산의 전부인 대학 입학금과 생활비를 도둑맞고 처음으로 진짜 삶, 흑인으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구태여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흑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백인의 외모를 한 ‘나’는 스스로 흑인임을 밝히고 이제 시가 제조공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다시 운명의 그날이 찾아온다. 공장이 문을 닫게 돼 동료들과 함께 일을 찾아 뉴욕항으로 온 ‘나’는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되고, 흑인만이 느낄 수 있고, 흑인만이 전할 수 있는 진정한 흑인의 음악을 찾아다니다 다시 운명의 그날을 만나게 되었다. 엄숙하고 비교적 말이 없는 이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부츠 차림에 채찍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금발의 큰 키에 호리호리하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거칠게 기르고 반짝이는 회색 눈을 가진 그런 타입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태워라!” 하는 소리와 함께 침목이 땅에 박히고, 밧줄이 풀리고, 가져온 쇠사슬이 희생자와 말뚝 주위로 꽁꽁 묶이고, 힘을 모으는 듯 잠시 웅크렸던 불길이 희생자의 머리까지 높이 치솟아 올랐다. 한때 사람이었던 희생자는 쇠사슬에 죄인 채 꿈틀대며 몸부림치다 신음과 비명소리를 내질렀는데, 그가 바로 ‘나’와 같은 흑인이었다.
“‘나’는 나 자신이 그렇게 다루어질 수 있는 종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는 멀리 도망쳐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성공한 백인 중산층이 되었다. 지금의 ‘나’에 만족하고 달리 되기를 원하지 않게 만든 것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라고 위안하면서도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는 때때로 ‘나’는 결국 하찮은 부분을 선택한 것이라는, 한 그릇의 죽을 위해 ‘나’의 출생권을 팔아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승진 축하를 위해 거래처의 직원들이 보내온 난 화분에 물을 주거나 대학 입학을 코앞에 둔 아이들을 위해 서둘러 화장을 하고 입시설명회장으로 뛰어가다 말고 문득, 한 그릇의 죽을 위해, 나를 부정하고 나의 출생권을 팔았으나 ‘결국 하찮은 부분을 선택한 것’이라는 후회를 때때로…… 혹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주하고 있다면, 당신 역시 한때는 흑인이었던 남자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