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우스운, 웃지 못할 이야기들
요건 틀림없이 아주 재밌는 소설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구미가 당겼다. 《감상소설》. 과연 내 독서영감은 절륜해! 뭐, 이런 재밌는 소설 제목이 다 있단 말인가? 그런데 책을 마주한 순간부터 예상과 달리 장편이 아니어서,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작품 한 편 한 편이 어디 한 줄 흘려 읽을 만한 데가 없어서, 괜히 이 책을 골랐다는 후회가 독서의 즐거움을 묽혔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아, 아무 책무 없이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복되도다. 《감상소설》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이 책 한 권을 고스란히 옮겨야 할 것 같은 공포가 필력의 허술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게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아, 내게 의무 지어진 분량이 딸랑 400자라면 작히 좋으랴. 얼렁뚱땅 위 문단으로 마칠 수 있었으련만. 이럴진대, 그럼 다른 책으로 바꾸는 게 어떨까 하는 유혹도 들었지만, 《감상소설》을 소개하는 영광의 한 구석을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글감에 압도당하면 시시콜콜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딴소리로 초를 치며 시종일관하게 된다. 아마 나는 이 짧은 글을 그렇게 채우게 되리라.
「아폴론과 타마라」「사람들」「무서운 밤」「꾀꼬리는 무엇을 노래할까」「즐거운 모험」「라일락 꽃이 핀다」「지혜」「암염소」 이렇게 여덟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감상소설》에는 총 네 개의 서문이 실렸는데 1927년 3월 초판 서문에는 콜렌코르프, 1928년 5월 2판 서문에는 ‘K. y.’로 보이는 키릴문자, 같은 해 7월 3판 서문에는 ‘C.’와 파이 기호 같은 모양의 키릴문자, 1929년 4월의 4판 서문에야 비로소 ‘미하일 조셴코’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책, 이 《감상소설》은 신경제정책과 혁명이 절정일 때 썼다’로 말문을 여는 1판 서문부터 4판 서문까지는 소심한 변명이 그득하고, 그러면서도 기어이 한구석에 할 말을 찔러 넣고 있는데 어찌나 많은 맛을 담고 있는지. 소설문학에 대한 재능과 열정이 끓어 넘치는 작가가 전체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얼마나 부단히 조심했는지 절절히 느껴진다. 그는 우리의 시인 김수영처럼 실생활의 안정도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도태됐다. 자신들의 모습을 울 수도 웃을 수도 없게 그려낸 ‘웃기는’ 소설로 많은 ‘인민’의 사랑을 받았건만 1943년에 작가동맹에서 제명됐던 것이다.
뭐, 세월이 하수상하면 우리의 전 문화부 장관 유인촌 같은 분들이 윗분 발치에 강림하시게 마련이다.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작가는 그 뒤 살림살이를 팔거나 구둣방에서 일하거나 갚을 길 없는 돈을 꿔서 연명하는 팔자로 전락했다. ‘작가로서 조셴코(이런 덜 떨어진 컴퓨터라니…… 계속 ‘셴’을 치는 순간 ‘좃pszh’으로 바뀌네. 아, 시간 없어 죽겠는데…… 내가 찍는 대로 찍히란 말이다!)는 웃음과 풍자의 거장이었으나, 삶에서 그는 비극적 주인공이었다.’ 참, 미하엘 조셴코는 1895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구소련 작가다. 1958년 7월 22일 졸(卒).
전체주의 사회와 독재자들은 풍자를 싫어한다. 뭐, 다른 거 다 관두더라도 매사 진지하고 근엄한 (그게 또 얼마나 웃기는지를 히틀러와 같은 디자인 콧수염을 한 채플린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기강을 흩트리는 게 딱 질색인데 풍자는 웃음을 주고 웃음은 기강을 흩트리는 것, 발본색원해야겠지. 내가 ‘웃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휴,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아, 독자들이여! 하, 그대, 나의 소비자들이여!’ 하거나 ‘그러나 사건을 서술하기에 앞서 작가는 몇 가지 의심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문제는 소설의 플롯이 진행되는 중에 공감이 잘 되지 않는 여자들 두세 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면서 의논성스러운 척 작가가 끼어드는 수작도 재밌고, ‘폭풍우 같은 혁명의 세월은 (아가씨들에게) 오랫동안 살펴본 다음 원하는 곳에 닻을 내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곤로 앞쪽 벽에는 바퀴벌레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있었다. 창 옆에는 괘종시계가 걸려 있었다. 진자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며 쉭쉭 소리를 냈고, 삐걱거리며 바퀴벌레의 삶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는 젊은 아내에게 특별히 다정한 애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삶을 가치 있게 장식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온갖 개 같은 일상사를 행복한 생활의 아름다운 정밀 사건으로 만드는 그런 애착 말이다’ 같은 씨줄에 깃털처럼 속속 날아와 얹혀 있는 ‘노파는 노파다. 어떤 노파인지는 개들이나 구별할 수 있겠지’ 같은 날줄. 그 절묘한 짜임에 감탄하면서 나는 내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책을 헬스장에까지 갖고 가서 실내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도 키득거렸고, ‘거꾸리’에 매달려서는 ‘독자의 면전에서 고백하기는 쑥스럽지만, 작가는 인간 유기체의 나약함과 유기성에 대해, 그리고 예를 들어 인간은 주로 수분, 주로 체액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버섯이나 과일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왜 물이 그렇게 많아야 한단 말인가?”’ 같은 구절을 읽으며 허파가 납작하게 눌리는 푹! 소리를 몇 번이고 내지 않을 수 없었다.


